국민의힘에서 시작된 ‘이준석 돌풍’이 여권에선 문파 권력을 키우는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최고위원 후보자 예비경선(컷오프) 선출권을 중앙위원 50%와 권리당원 50%로 개선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민주당은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시·도지사 등 중앙위원 500여명이 컷오프 통과자(대표 후보 3명·최고위원 후보 8명)를 추린다. 정 의원은 “소수의 중앙위원이 일차적으로 후보 컷오프를 하므로 당원과 국민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다”며 “당내 기반이 없는 새로운 인물들이 도전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엔 김용민 최고위원과 박주민·김남국·황운하·장경태·이수진·임오경·최혜영 등 친(親)조국파 의원들이 정 의원 옆에 나란히 섰다. 5·2 전당대회에서 친문 권리당원 지지로 최고위원 후보중 최고 득표율(17.73%)을 기록한 김 최고위원은 “신인들이 당 지도부에 도전할 문이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민주당 의원 총 91명이 서명한 당규 개정안 건의서를 이날 오전 송영길 민주당 대표에게 제출했다.
“문파에 당 넘어간다”
이런 주장의 배경은 이준석(36) 후보가 국민의힘 대표 예비경선에서 1위를 기록하며 몰고 온 돌풍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 의원은 지난달 27일 열린 부동산 정책 의총에서도 “야당에서도 이준석 후보 같은 사람이 나온다. 우리도 젊은 정치인이 등장하도록 당헌·당규를 개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정 의원의 진의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왜냐면 국민의힘 예비경선은 ‘당원 50%+일반 여론조사 50%’의 구조이지만, 정 의원의 안은 ‘중앙위원 50%+권리당원 50%’의 구조다. 일반 국민들의 여론이 반영될 통로가 없을 뿐더러, 권리당원들은 대개 강한 친문 성향이란게 정설이다. 결국 정 의원 주장대로라면 문파의 입김이 더욱 강해지는 셈이다.
그래서 정 의원이 친전을 보내 서명을 요청했을 때 거절한 의원들도 많았다고 한다. 주로 친문 당원들과 거리를 두는 김근태(GT)계 의원들이었다. GT계 중진 의원은 “문파들이 특정 주자를 집단적으로 밀면서 전당대회가 혼탁해질 수 있다. 또 문파에 당이 포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의원 본인이나 그와 가까운 인사들이 컷오프 문턱을 넘지 못할까봐 이들이 직접 나섰단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8·29 전당대회에서 정 의원과 가까운 이재정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서 컷오프 됐다. 서울권 중진 의원은 “조직이 없지만, 당원 인지도는 높은 정 의원이 내년 전대 출마를 위해서 포석을 까는 것”이라고 말했다.
커지는 문파, 막히는 내부토론
극성 친문지지층, 즉 ‘문파’가 민주당의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는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온라인 당원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문 대통령에 대한 팬덤을 가진 유권자들이 대거 입당해 현재 80만명 권리당원의 주류로 등장했다.
이럴수록 당심과 민심 괴리는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이재명 경기지사나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6월 말 대선 예비경선(권리당원 50%+여론조사 50%)을 앞둔 주자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극성 친문 당원들이 ‘과대대표’되는 현상이 커지면 민주당 내 토론은 막히고 중도 확장력도 잃는다”며 “당심과 민심의 괴리로 민주당 재집권이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