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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에 오늘도 "오징어배 뜬다"…네·카·라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야간노동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직원들이 ‘오징어배가 뜬다’는 자조했겠나. 수출 역군으로 불렸던 봉제 노동자에서 디지털 노동자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장시간 저임금 노동은 변한 게 없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17년 4월 구로디지털단지역 앞 사거리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선거 출정식에서 한 말이다. 밤낮 없이 사무실에 불을 밝히는 정보기술(IT) 업계의 현실을 빗댄 표현이다.

오징어잡이 배의 모습. IT 업계 종사자는 늦은 밤까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초과 근무를 하는 상황을 '오징어 배'에 비유한다. [중앙포토]

오징어잡이 배의 모습. IT 업계 종사자는 늦은 밤까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초과 근무를 하는 상황을 '오징어 배'에 비유한다. [중앙포토]

평균 보수 1억 넘었지만 불만은 더 커져 

이듬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되면서 판교ㆍ구로 등에 밀집해 있는 IT 노동자의 근로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이버와 엔씨소프트, 카카오 등의 지난해 직원당 평균 보수가 1억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이들 회사에선 직원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 물리적인 근무강도가 여전히 세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노조는 지난달 28일 ‘월간 공동성명’을 통해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네이버 노조가 비즈ㆍ포레스트ㆍ튠 등 3개 사내독립기업(CIC) 소속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0%가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네이버 CIC 직원 10% “주52시간 초과 근무”

2017년 이후 결성된 IT산업노동조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017년 이후 결성된 IT산업노동조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설문에 따르면 조합원은 긴급장애 대응이나 서비스 출시 등을 이유로 임시 휴무일에 업무를 하거나, 사내 근무시간 시스템에 입력하지 않고 초과 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면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올해 3월 카카오 직원들은 사내 제보를 모아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청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4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성남지청은 카카오에 대한 근로감독을 했고, 지난달 25일 6개 항목에 대한 위반사항을 확인했다. 주 52시간 이상 근무, 임산부 시간 외 근무, 연장 근무 시간 미입력 강요 등이다.

여기에다 경직된 조직문화와 인사평가 시스템 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에선 지난달 25일 직원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평소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겼다. 네이버 노조는 입장문을 내고 “고인이 생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고인이 힘든 상황을 토로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카카오 역시 올해 2월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블라인드에 유서를 올린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글은 삭제됐지만, 카카오 안팎에서 ‘동료 평가’ 등 인사평가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인사평가에 ‘○○○와 다시 함께 일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포함되고 결과를 본인에게 알려주는 것이 가혹하다는 지적이다.

“사업분야는 21세기, 경영방식은 20세기”

이해진 네이버 GIO(왼쪽),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해진 네이버 GIO(왼쪽), 김범수 카카오 의장.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T 업계는 성과에 대한 압박이 크고 밤을 새워서 집중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과중 노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은 노사가 대화를 통해 목표치에 대한 합리적인 범위를 책정하는 등 성과 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디지털 전환을 대표하는 기업이 서비스와 사업 분야가 디지털화돼 있다고 해서 조직 운영 방식도 수평적이고 유연할 것이란 건 착시”라며 “네이버ㆍ카카오 모두 사업분야에선 21세기적 진화를 했지만, 경영방식은 20세기 권위주의적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조직을 경영하는 구조와 시스템, 프로세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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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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