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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개발자 죽음의 증언…IT업계선 "바닥 좁고 학연 세다"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뉴스1]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뉴스1]

네이버 본사 직원이 업무상 괴로움을 호소하는 메모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 네이버가 회사 차원 조사에 들어간다.

30일 네이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조만간 직원 A씨 사망 사건 관련 조사를 사외 이사로 구성된 ‘리스크 관리위원회’에 맡겨 진행할 계획이다. 네이버 이사회 산하로 ‘리스크 원인 진단 및 사후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위원회다. 사외 이사인 정의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위원회는 외부 노무법인 등 전문기관에 이 사안에 대한 심층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앞서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 28일 직원들에게 보낸 사내 이메일에서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고 이와 별개로 사외 이사진에게 의뢰해 외부 기관 등을 통해 투명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네이버 직원이었던 A씨는 지난 25일 자택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타살이나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직장 동료를 대상으로 사망 경위를 수사 중이다. 사건 내용이 알려진 직후 직장인 익명 게시판 등에는 A씨가 상사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의 글이 퍼졌다. 지난 29일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직위 이용 괴롭힘에 의한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되는 사건에 대한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A씨 지인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국내 대표 IT기업에서 직위에 의한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및 제도적 장치 마련을 부탁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루 만에 4000여 명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도 자체 조사를 진행 할 계획이다. 노조는 30일 조합원들에게 “회사는 적극적으로 (A씨 관련) 데이터 보전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입장문을 이메일로 보냈다. 직원 퇴사 규정에 따라 네이버 내부망(커넥트)에서 A씨 계정이 삭제됐는데 앞으로 근무기록 같은 관련 데이터를 잘 보존해달라는 취지다. 노조 관계자는 “근무기록, 업무지시 등에 대한 사내망 데이터가 향후 진행될 조사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며 “노조 차원에서도 별도 조사 후 회사에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의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특화 고충처리 익명 채널 ‘With U’ 절차도. [사진 2020 네이버 ESG보고서]

네이버의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특화 고충처리 익명 채널 ‘With U’ 절차도. [사진 2020 네이버 ESG보고서]

업계 안팎에서는 수평적 소통구조, 건강한 조직문화를 중시하던 네이버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실제 네이버는 사내 복수의 고충처리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에 대해 제보할 수 있는 익명 채널 ‘With U’와 사내 통합 채널 'kNock'이 대표적이다. 네이버 ‘ESG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With U(6건), kNock(2건)을 통해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고충은 모두 내부 규정에 따라 처리 완료됐다. 지난해 열린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에도 전 직원이 참여해 100% 수료했다. 국내 스타트업계 한 관계자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잘 운영되려면 제도도 중요하지만 윗선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결국 제도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IT기업 내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개발자 사회의 경우 특정 학교 출신의 입김이 강한데 이들의 ‘끼리끼리’ 문화가 조직 내 억압 구조를 강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한 IT 기업 임원은 “개발자 사회가 생각보다 좁고 관리자급은 학연이나 전 직장 근무이력 등으로 연결된 경우가 많다”며 “상사의 평가가 부정적일 경우 다른 회사로 옮기기 쉽지 않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자유롭게 소통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내 괴롭힘 진정사건 접수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직장내 괴롭힘 진정사건 접수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는 네이버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 문화 전반의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접수 사건은 증가 추세다. 2019년 월평균 355건(총 2130건)에서 지난해 월평균 485건(총 5823건)으로 늘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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