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플라이 대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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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그런데도 이 영화가 볼 만하다면, 무엇보다도 후반부의 두 장면 때문이다. 월급쟁이 소시민 가장 장가필(이문식)이 퇴근버스와, 나쁜 고교생과 각각 한판 승부를 벌이는 대목은 전반부의 지루함을 만회하는 쾌감을 안겨준다.

그럭저럭 일상에 만족하던 장가필이 무모한 도전에 나선 것은 딸 때문이다. 여고생 딸이 노래방에서 사정없이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한다. 가해자인 남학생은 유망주 권투선수이고, 주변에서는 딸아이의 행실을 거론하며 은근한 협박과 위로금으로 사건을 덮으려 한다. 장가필은 물리적 복수를 시도하지만, 배불뚝이 아저씨로서는 당연히 힘에 부친다. 이를 목격한 몇몇 고교생이 무슨 꿍꿍인지 조력자를 자청한다. 그중 싸움짱이면서도 초월적인 자세의 승석(이준기)이 본격적인 트레이너가 된다. 장가필은 한참 어린 스승에게 꼬박꼬박 공대하는 굴욕을 감수하며 체력단련에 몰두해 딸을 때린 그 녀석과의 결전을 준비한다.

이문식의 연기는 영화를 그런대로 볼 만하게 하는 또 다른 요소다. 이 영화를 결코 그의 베스트로 꼽을 순 없어도, 허허실실의 유머로 영화에 리듬감을 살려내는 솜씨는 역시나 그가 제격이다. 이처럼 한눈에 소심한 아저씨의 전형성이 드러나는 장가필에 비해 고교생 승석은 신비주의 캐릭터다. 어린 나이에도 인생과 싸움에 대해 신랄한 어조로 꽤 쓸 만한 경구를 뱉어내는 배경에, 원작소설에는 차별받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설정이 있었다. 영화는 이를 '아버지 부재'와 '어린 시절의 상처'로 대신하는데, 결과적으로 인물의 깊이는 별로 없다. 승석의 손에 '체게바라 평전' '아리랑' 같은 책을 쥐여주는 식의 이미지 연출에 그친다.

하지만 자고로 처절한 수련과 싸움 끝에 벌어지는 대결은 통쾌하게 마련. 그 장본인이 참으로 보잘것없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쾌감은 더욱 커진다. 외계인 이티체형의 아저씨가 임금왕(王)자 근육맨으로 바뀌어 소심하고 허접한 인생에 한 주먹을 날리는 대목은 영화 속 노래처럼 '원더풀, 아빠의 청춘!'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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