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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맥주 양조장에서 맥주 안 팔았다…이거 실화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66)

대한민국 수제맥주 20년사⑤ 주세법에 울고 웃는 수제맥주

수제맥주 시장의 흥망성쇠는 주세법 개정 방향과 궤를 같이했다.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규제라는 바위를 하나씩 치울 때마다 업계는 변곡점을 맞이했고, 파란이 일었다.

시작은 2002년 주세법 개정으로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가 발급되면서부터였다. 두세 개의 대기업 이외에 작은 규모의 상업 양조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때 소규모 양조장은 관리와 감시의 대상이었다. 부적절한 제품을 유통하는지, 탈세를 하는지 등에 대해 끊임없이 아니라는 증명을 해야 했고, 이 증명 과정은 작은 기업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사용하는 재료, 위생, 품질관리 등에서부터 판매량, 판매처에 이르기까지 과도한 규제가 산업을 강하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 두 맥주 회사가 거의 80년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은 좀처럼 변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수제맥주 시장의 규모는 전체 맥주 시장의 0.1%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 두 맥주 회사가 거의 80년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시장을 나눠가졌다. 수제맥주 시장의 규모는 전체 맥주 시장의 0.1%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진 pixabay]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 두 맥주 회사가 거의 80년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시장을 나눠가졌다. 수제맥주 시장의 규모는 전체 맥주 시장의 0.1%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진 pixabay]

비로소 맥주를 산업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 발급이 시작된 지 10년도 넘은 시점에서다. 2012년경 한 국회의원이 대기업 과점 시장의 문제를 제기했다. 바로 19대 국회의원이었던 홍종학 전 의원이었다. 그는 2017년부터 1년 5개월여 간 중소벤처기업부 초대 장관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홍 전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여러 차례에 걸쳐 주세법 개정을 주도했다. 그중에서도 수제맥주 시장의 물줄기를 완전히 뒤바꾼 것은 2014년 4월의 주세법 시행령 개정이었다. 전국적으로 성업했던 하우스맥주 업장을 고사시킨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외부 유통 금지’ 조항을 푼 것이다. 그때까지 소규모로 맥주를 만드는 곳은 해당 업장 내에서만 맥주를 판매할 수 있어 성장을 꿈꿀 수 없었다. 수제맥주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부분이 바뀌면서 수제맥주 양조장은 다른 식당, 술집 등 업장에 맥주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또 맥주 축제, 전시회 등에서 맥주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당시 개정 시행령에서는 소규모 맥주 제조자에 대한 세금 감면 폭을 넓혔고 맥주 제조 시설 중 저장조의 용량을 100㎘에서 50㎘로 하는 등 기준을 완화했다.

그동안 규제에 갇혀있었던 수제맥주 업계는 이 시행령 개정으로 날개를 달았다. 먼저 2005년 사상 최대치인 112개까지 늘어났다가 반 토막 났던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자체적으로 맥주를 만드는 호프집’에 머물렀던 수제맥주 사업 규모를 지역 대표 맥주로, 더 크게는 전국구 수준으로 키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는 2014년 54개에서 2015년 72개, 2017년에는 100개를 넘어섰다. 이어 2018년에는 한 해에만 44개의 맥주 양조장이 새로 생겨날 정도로 붐이 일어났다.

수제맥주 제조면허 수 추이. [자료 한국수제맥주협회]

수제맥주 제조면허 수 추이. [자료 한국수제맥주협회]

수제맥주 시장에 기업, 벤처캐피털(VC) 등의 투자가 몰리기도 했다. 획기적인 시장 확대에 대한 가능성을 본 것이다. 2014년 시행령이 바뀐 이후 2016년까지 수제맥주 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생산 규모를 갖춘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플래티넘맥주, 제주맥주, 장앤크래프트브루어리 등이 투자를 받아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2015년 진주햄이 카브루를 인수했고 신세계는 직접 수제맥주 양조장 데블스도어의 문을 열었다.

수제맥주를 외부에 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희망의 불씨는 지폈지만, 여전히 수제맥주 확산의 걸림돌은 많았다. 단지 다른 업장에만 공급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유통 규제는 2016년부터 하나하나 풀렸다. 2016년 2월 비로소 양조장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맥주를 직접 담아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맥주 양조장에서 맥주를 살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실존했던 규제다.

2018년 4월에는 소규모 맥주도 백화점, 슈퍼마켓,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 판매할 수 있게 규제가 완화됐다. 캐닝 장비를 갖추고 있던 플래티넘이 편의점에 발 빠르게 진출했고 카브루, 제주맥주 등도 마트와 편의점 매대에 놓이기 시작했다. 백화점에 국산 수제맥주 코너가 생겨나기도 했다. 소규모 맥주에 대한 과세표준 인하 폭도 지속적으로 커졌다. 이런 주세법 개정의 뒤에도 홍종학 전 장관의 법안 발의, 토론회 개최, 여론 형성 등의 노력이 있었다.

잇단 규제 완화에 맥주 업계의 외형이 눈에 띄게 성장했고, 소비자들도 쉽게 국산 수제맥주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수제맥주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게 돼 결국에는 종량세 개편이라는 수제맥주 시장의 또 다른 전기가 찾아올 수 있었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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