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피어나던 하우스맥주 시들게 한 규제와 세금

중앙일보

입력 2021.03.25 15:00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63)

대한민국 수제맥주 20년사② 하우스맥주 사라진 이유는

전국의 하우스맥주 업장 수는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가 시행된 지 3년 만인 2005년 112개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는 급격하게 내리막을 걸어 2012년 58개로 쪼그라들었다. 7년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한 해 뒤인 2013년에는 49개까지 줄어들었다. 맥주 제조 면허는 유지하면서 실제 영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어, 업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전국에 30여개만 남았다고 봤다. 더는 직접 맥주를 만들지 않지만 맥주 양조 설비를 인테리어 삼아 남겨두고 외부에서 들여온 맥주를 판매하는 곳들도 있었다.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 도입 초기부터 시작해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온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개별 업장에서 더는 맥주를 생산하지 않고 있다. 2004년 문을 연 부산 호텔농심 내 허심청브로이, 같은 해 영업을 시작한 강원도 원주 브로이하우스 등 지방의 몇몇 업장만이 20년 가까이 맥주 생산을 지속하고 있을 뿐이다.

옥토버훼스트는 경기도 부천과 용인에 따로 공장을 마련하고, 생산한 맥주를 서울 종로의 옥토버훼스트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다른 브랜드의 맥주를 위탁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플래티넘은 충북 증평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세워 ‘인생에일’, ‘퇴근길’, ‘에일의 정석’ 등 캔맥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 충남 예산에 대규모 공장을 추가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 홍대 앞의 캐슬 프라하는 현재도 펍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더는 맥주를 양조하지 않는다.

플래티넘은 충북 증평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세워 ‘인생에일’, ‘퇴근길’, ‘에일의 정석’ 등 캔맥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 충남 예산에 대규모 공장을 추가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플래티넘 인스타그램]

플래티넘은 충북 증평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세워 ‘인생에일’, ‘퇴근길’, ‘에일의 정석’ 등 캔맥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 충남 예산에 대규모 공장을 추가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플래티넘 인스타그램]

하우스맥주 붐이 이렇게 빨리 사그라진 이유는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바로 그 이름 안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하우스맥주라는 명칭은 맥주를 양조한 업장 안에서만 맥주를 판매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세청에서는 2002년 새로운 맥주 제조 면허를 발급하면서 ‘소규모 맥주 제조자는 만든 맥주를 업장 내에서만 팔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생산한 맥주를 업장 내에서만 소진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규모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면허가 신설된 지 2년여가 지난 시점인 2003년 12월에는 하우스맥주의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고 외부로 판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조장과 판매장을 반드시 배관시설로 연결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신설됐다. 제조 장비와 서빙 장비 간 거리가 먼 업장에서는 배관의 청결 관리도 큰 숙제였다.

정부는 하우스맥주 업장들이 빠른 속도로 폐업하던 2008년에 이르러서야 주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맥주의 외부 공급을 허용해줬지만 대부분의 업체에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동일인이 운영하는 매장에만 공급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 이상 여전히 외부에 유통할 수 없었다. 당시 업장을 몇 개씩 운영할 여력이 되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하우스맥주는 품질, 가격 등에서 시장에 장기적으로 어필할 경쟁력이 없었다.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주세법이 깔려있었다. [사진 pixabay]

하우스맥주는 품질, 가격 등에서 시장에 장기적으로 어필할 경쟁력이 없었다.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주세법이 깔려있었다. [사진 pixabay]

무엇보다 하우스맥주의 쇠락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품질 문제였다. 국내에는 맥주를 제대로 만들고 관리할 전문가가 태부족이었다. 많은 소형 하우스맥주 업장에서는 전문 양조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초기에 외국인 양조사를 고용해 단기간 맥주 만드는 법을 익히고 그들이 돌아간 후 비전문가 직원이 맥주를 만드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양조 설비를 구입할 때 설비 업체 직원에게 사용법과 함께 맥주 만드는 법을 배워 양조하는 곳도 많았다. 맥주 품질이 들쭉날쭉했던 이유다. 또 맥주 관리에 있어서도 문제가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맥주 재고가 쌓이면서 맛이 변한 오래된 맥주를 그냥 제공하기도 했다. 소비자는 상한 맥주 맛에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많이 팔아도 남지 않는 구조’는 하우스맥주 비즈니스 자체를 위협했다. 하우스맥주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 원가에 대해 100%가 넘는 세금이 매겨진 것이다. 당시 맥주 가격이 6000~7000원으로 소비자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알고 보면 절반 이상이 세금이었다.

결국 하우스맥주는 품질, 가격 등에서 시장에 장기적으로 어필할 경쟁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주세법이 깔려있었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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