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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꿀맛 같은 월차, 지방 맥주 양조장 투어 떠나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61)  

오랜만에 온전한 평일 하루가 주어졌다. 망설일 필요 없이 맥주다. 양조장에 가서 신선한 맥주를 사다 쟁여놓으면 얼마 동안은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 남쪽의 맥주 양조장은 지방에 내려갈 때마다 부지런히 다녔다. 가평, 춘천, 평창, 속초, 강릉 등의 양조장도 하나하나 정복했다. 그런데 유독 서울의 북쪽에 자리 잡은 맥주 양조장은 가 볼 기회가 없었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 다니기 꺼려지는 요즘, 평일 오후의 지방 맥주 양조장이라면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할 것 같다.

현장 판매보다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양조장은 오픈 시간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게 안전하다. 양조장의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나 네이버 쪽지 등으로 문의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맥주를 마시는 것보다 드라이브를 즐기는, 운전을 해줄 지인과 함께라면 금상첨화다.

앰비션브루어리 외관(좌). 앰비션브루어리 맥주(우). [사진 황지혜]

앰비션브루어리 외관(좌). 앰비션브루어리 맥주(우). [사진 황지혜]

첫 방문지는 경기도 구리에 있는 앰비션브루어리다. 식품 제조 공장이 모여 있는 사농동에 위치한 앰비션브루어리는 지난 2018년 문을 열어 병과 케그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양조장 공간이 여유롭지 않아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즐기기는 어렵고 병맥주를 구매해 오면 된다.

크지 않은 규모지만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생산된다. 대표 맥주는 ‘꽃신’과 ‘헬레스 라거’다. 꽃신은 독일 베를린에서 유래한 베를리너 바이세 스타일로, 특유의 신맛에 로즈힙과 히비스커스 꽃을 넣어 향기로움을 더했다. 히비스커스 ‘꽃’과 신맛의 ‘신’을 조합한 이름과 함께 화사한 꽃이 가득 그려진 라벨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3.8%의 낮은 도수로 식전에 입맛을 돋우기에도 알맞고 안주 없이 풍미를 즐기면서 마셔도 좋다.

맥주 스타일 자체를 이름으로 택한 헬레스 라거는 쌉쌀함보다는 고소함이 강조된 독일 뮌헨식 라거 맥주로 깔끔한 맛이 매력적이다. 상쾌하게 갈증을 풀어주고 어떤 안주와도 무리 없이 어울린다. 지난해 새로 출시한 뉴잉글랜드IPA 스타일인 ‘쥬시홀릭’은 과일 주스 같은 풍미로 일상에 상큼함을 더해주기 충분하다. 이밖에 ‘앰비션 바이젠’, ‘블랙’, ‘깡타’ 등 모든 맥주가 탄탄한 기본기로 무장한 느낌이다. 양조장의 내공이 짐작된다. 앰비션브루어리의 김민태 대표는 울산의 한 양조장에서 실력을 키우다가 영국 헤리엇와트대학에서 양조학 석사를 취득하고 돌아와 앰비션브루어리를 창업했다. 김 대표의 열정적인 맥주 설명을 듣다 보니 자주 맥주를 사러 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양조장에 직접 가서 구매하면 어떤 맥주든 340㎖ 1병당 5000원 균일가다. 한 박스(24병)는 10만원으로 시중 판매가격보다 20~30% 저렴하다. 양조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맥주기 때문에 최대 1년까지 냉장 보관해 마시기에 무리가 없다.

히든트랙브루잉 외관(좌), 히든트랙브루잉 내부(우). [사진 황지혜]

히든트랙브루잉 외관(좌), 히든트랙브루잉 내부(우). [사진 황지혜]

앰비션브루어리에서 맥주를 실하게 담고 30여분을 달리면 경기도 양주의 히든트랙브루잉에 도착한다. 히든트랙브루잉은 지난 2014년 홈브루잉을 즐기던 3명의 직장인이 서울 안암동에 작은 브루펍(맥주를 양조해 판매하는 펍)을 만들면서 시작된 양조장이다.

2018년 양주에 대형 양조장을 마련했고 지난해부터는 병맥주 생산도 시작했다. 양주의 히든트랙브루잉 양조장에는 맥주를 제조하는 공간과 분리된 펍이 있지만 펍을 상시 운영하지는 않는다. 병맥주를 구매할 수 있으며 캔에 맥주 포장도 가능하다. 서울의 안암오거리와 회기동에 있는 히든트랙브루잉 직영 펍에서 다양한 맥주와 안주, 음악 관련 행사를 즐길 수 있다.

히든트랙브루잉의 시그니처 맥주는 페일 에일 스타일인 ‘엘리제’다. 최초 양조장이 설립된 지역 인근에 있는 고려대의 대표 응원가 ‘엘리제를 위하여’를 딴 이름이다. 상큼한 과일향과 함께 맥아의 무게감이 조화로워 언제 마셔도 만족스럽다. 양조장이 시작할 때부터 만들어졌던 이 맥주는 대한민국 국제 맥주대회(KIBA)를 비롯해 많은 맥주대회에서 수상한 히든트랙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이와 함께 국산 갱엿을 이용해 만든 ‘엿대급’은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벨지안 두벨 스타일 맥주로 말린 어두운 과일의 향에 벨기에 효모 특유의 복잡하고 미묘한 풍미가 매력이다.

히든트랙은 국내 수제맥주 업계에서는 나름 긴 업력을 갖고 있고 꾸준히 좋은 맥주를 만들다 보니 골수팬(?)이 많은 양조장이기도 하다. 맥주 덕후가 만들고 맥주 덕후들과 함께 성장해 온 양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행선지인 동두천 브루어리에서 보낸 화분이 눈에 띈다.

동두천브루어리 내부(좌). 동두천브루어리 내부(우). [사진 황지혜]

동두천브루어리 내부(좌). 동두천브루어리 내부(우). [사진 황지혜]

다시 20분 정도 달려 동두천브루어리로 간다. 오늘의 맥주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다. 앞서 방문한 앰비션브루어리, 히든트랙브루잉과 달리 펍을 운영하며 현장에서의 판매를 위주로 한다. 맥주 관련 행사에서 동두천브루어리의 정기환 대표와 명함을 주고받은 후 언젠가 방문해보리라 별렀던 곳이다.

건물 2층의 아담한 공간에 양조 설비가 마치 테트리스 게임의 블록쌓기를 연상케 할 만큼 알차게 들어서 있다. 작지만 야무진 느낌이다. 펍 공간도 세련되지는 않지만 아늑하게 한잔 마실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정 대표가 혼자서 양조를 맡고 있는 만큼 핵심 스타일 6종을 집중해 만든다. 그중에서 ‘바이젠’과 ‘헬레스 라거’가 입맛을 당겼다. 뒤에 남는 눅진함이 전혀 없는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다. 동두천의 입지 특성상 고객의 다수를 차지하는 미군에게는 아메리칸 페일 에일 스타일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음식 메뉴는 피자, 치킨 등으로 구성돼 단출하지만 맛은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

양조장 근처에 있는 동두천 중앙시장에 가보는 것도 재미다. 호떡, 붕어빵 같은 간식부터 농축산물, 식재료, 옷, 이불, 주방용품 등 없는 게 없는 동두천 최대 재래시장이다. 디저트(?)로 순대를 한 접시 사 들고 귀갓길을 재촉하니 하루가 이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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