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태초에 맥주커뮤니티 있었다…수제맥주 문화 산실

중앙일보

입력 2021.05.06 15:00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65)

대한민국 수제맥주 20년사④ 태초에 맥주 커뮤니티가 있었다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에서 주한 외국인들이 맥주의 꿈을 키워가고 있던 2011~2012년 즈음, 맥주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토종(?) ‘맥주 덕후’를 중심으로 한 수제맥주 문화가 움트고 있었다.

맥주 커뮤니티 양대 산맥은 ‘맥주만들기동호회(맥만동)’과 ‘비어포럼’이었다. 이 두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지금도 양조장, 펍, 수입사, 교육기관 등 맥주 관련 산업 곳곳에서 주축으로 일하고 있다. 당시에는 맥주 관련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해외 맥주와 양조장 정보, 맥주 양조 노하우, 테이스팅 기법 등 자신이 가진 정보를 나누고, 또 다른 회원으로부터 얻기도 하면서 커뮤니티가 맥주 애호가를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됐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끼리 펍이나 양조장 등을 함께 창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중 일부는 맥주에 대한 열정 하나로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웠던 것은 물론이다.

당시 수제맥주 업계에는 맥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연대의식과 열기가 넘쳐흘렀다. 단순히 맥주가 인기 있는 자영업 업종으로 여겨졌던 하우스맥주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흐름이었다.

맥주 만들기 동호회.

맥주 만들기 동호회.

두 커뮤니티는 모두 맥주 덕후로 구성됐지만 모임의 성격에는 차이가 있었다. 맥만동은 이름 그대로 홈브루잉(자가양조) 기술을 향상해 더 좋은 맥주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고 비어포럼은 국내외 상업 맥주 정보, 테이스팅 등에 특화된 커뮤니티였다.

맥만동의 역사는 2002년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가 발급되기 시작한 해에 시작됐다. 이후 직접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취미를 가진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 커뮤니티가 큰 관심을 받게 됐다. 맥만동에서는 맥아, 홉, 효모 등 맥주 재료에서부터 양조 장비, 레시피, 양조 노하우 등 홈브루잉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서울·경기, 부산·경남, 대구·경북, 대전·충청, 광주·전라 등 지역별 모임이 활성화한 것이 특징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공동 양조를 하는 한편, 지역별로 홈브루잉 대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 홈브루어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맥만동 회원이 모이는 지역의 거점도 있었다. 이를테면 서울 서북부에서는 불광동의 굿비어공방에 가면 맥만동 회원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맥만동에서 활동하면서 취미로 맥주를 만들던 사람들이 ‘덕업일치’를 이룬 경우도 많았다. 히든트랙 브루잉, 스퀴즈브루어리, 버드나무브루어리, 몽트비어 등 맥주 양조장을 비롯해 홈브루잉 장비와 재료 등을 판매하는 비어스쿨, 맥주 교육 사업을 하는 한국맥주문화협회 등이 맥만동 출신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양조사가 되거나 펍을 운영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진지하게 홈브루잉을 하는 사람 치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맥만동을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맥만동 회원은 3만9000여명에 이른다.

비어포럼.

비어포럼.

비어포럼은 맥주 덕후 5명이 주축이 돼 2012년 8월 15일 오픈했다. 맥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아카이브 형태로 저장한다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비어포럼에는 테이스팅과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와 벨기에의 트라피스트 맥주 등이 처음으로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비어포럼에서는 수입사와 함께 시음행사를 개최하고 맥주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오픈 후 2015년까지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1000명 이상을 기록하는 등 맥주 덕후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공간으로 역할을 했다.

비어포럼 운영진은 2013년 11월 이태원에 펍 ‘사계’를 오픈하기도 했다. 비어포럼의 연장선에서 다양한 맥주를 소개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자체 레시피로 양조한 맥주도 판매했다. 사계에는 언제나 비어포럼이나 맥만동 회원이 모여들었다. 새로운 맥주가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품평회가 벌어졌고 누군가 해외에서 미수입 맥주를 사 왔다고 하면 그날은 사계의 잔칫날이었다. 덕후들은 서로 귀한 맥주를 나누는 데 아낌이 없었다.

비어포럼을 만든 5인이 운영했던 수제맥주 펍 사계의 맥주. 사계는 지난 2017년 문을 닫았다. [사진 사계 페이스북]

비어포럼을 만든 5인이 운영했던 수제맥주 펍 사계의 맥주. 사계는 지난 2017년 문을 닫았다. [사진 사계 페이스북]

비어포럼 운영진은 현재 맥주 양조장, 맥주 교육기관을 운영하는가 하면 맥주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맥주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또 사계는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업계 인력을 많이 배출했다.

맥만동과 비어포럼은 서로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두 커뮤니티 활동을 같이한 이들도 많았다. 비어포럼 운영진 5명 중 4명이 맥만동 활동을 했을 정도다. 두 커뮤니티는 맥주 덕후를 맥주 산업으로 이끈 연결고리로서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동력이 됐으며 수제맥주 문화의 뿌리로 남아있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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