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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성장·고 물가의 적신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걱정해 오던 물가 문제가 현실로 우리 눈앞에 닥치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연말을 2개월이나 남겨 놓은 10월말 현재 이미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5%를 기록, 연말 억제 목표 선을 돌파했으며 연말까지는 7% 정도가 오르리라 한다.
정부의 통계 물가는 5%가 올랐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물가는 이보다 훨씬 높아 벌써부터 물가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던 터다.
그 같은 불안감이 연말 억제선 붕괴로 구체적으로 현재화된 셈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 중에 물가 문제만큼 심각한 것은 없다.
물가 상승은 근로자들의 실질 소득을 뺏어감으로써 모처럼 온 국민의 합의 아래 추진되고 있는 복지 정책을 물거품으로 만들뿐 아니라 애써 구축한 안정 기조를 바닥에서부터 뒤집어 놓을 우려를 던지고 있다.
더욱이 지금은 우리 경제가 수출 부진·성장 둔화 등으로 바닥권을 헤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물가 불안마저 가세하는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상태로 우리 경제를 몰고 갈 위험이 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처럼 물가 불안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이에 대한 대책이 별로 없다는데 있다.
잘 알다시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물가 불안은 그 요인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떤 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 전환과 직결돼 있다.
각계 각층의 욕구 불만이 임금 상승과 복지 수요의 증대로 나타나고 그것은 바로 물가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통제력이 약화된 정부의 총 수요 관리 능력과 행정의 이완을 통한 업자들의 담합과 매점 매석, 투기와 과소비 풍조, 그리고 노사 분규로 인한 일부 부문의 공급 부족 등이 모두 지금의 물가 불안을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물가가 오를 이유를 공급 부족이나 수요의 증가, 원가 상승 요인 등에서 찾고 있으나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물가 불안은 이 같은 모든 요인이 한꺼번에 겹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물가 문제를 시한 폭탄처럼 안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위험스런 상황으로까지 사태를 몰고 온 것은 그 원인이 한가지 처방만으로 다스릴 수 없는 물가 구조에 내재하는 복합적 요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물가 문제는 올해에 그치는게 아니다. 내년에도 노사 분규와 임금 인상 행진이 멈출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고 그밖에, 당장 가시적인 요인만으로도 추곡 수매가 인상·철도·지하철·우편 요금·상하수도 요금 등 그동안 물가 안정을 위해 억제해 왔던 부문들이 내년에는 모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 만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물가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정부는 물론 온 국민이 물가 문제의 심각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온 역량을 안정 기조 유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근로자나 농민도 물가 상승이 바로 자신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식, 요구를 자제하고 기업가도 안정 기조의 유지 없이 경제 성장이 있을 수 없다는 인식 아래 감량 경영, 원가 절감 등으로 임금 인상을 물가에 전가하는 일을 최대한 억제해야할 것이다.
정부는 물가를 행정적으로 억제한다는 구태의연한 발상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비전 아래 통화·금융·세제 등의 정책 수단을 고차적으로 동원하는 길을 찾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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