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봉인가 이란 30억 불 차관 요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한국경제가 과대홍보 돼 외국의 도움 요청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란·이라크정부가 각각 30억 달러 차관과 정책원유 도입을 요청해와 정부가 고민에 빠져있다.
양국의 요청이 한국정부가 들어주기 곤란한 것인데다 우리가 잘못 대응했다가는 이란. 이라크 전쟁 후 감정이 삭지 않은 두 나라 사이에서 자칫「등터진 새우」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란·이라크 모두 전후 복구를 위해 막대한 금액을 투자할 계획이어서 전후복구사업 참여를 원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양국의 신경을 거스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대이란·이라크관계는 올 들어서야 겨우 대사 급으로 정상화될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이란과는 62년 처음 외교관계를 수립, 67년에 공관을 설치했으나 81년7월 팬텀기 부품판매 요청을 한국 측이 거절한데다 이라크에 총영사관을 설치한데 대한 보복조치로 대사 급에서 대사대리 급으로 격하된 후 8년 만에야 정상화된 상태.
이라크와는 81년4월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지난7월 총영사 급에서 대사 급으로 양국관계를 격상시켰다.
정부가 두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양국의 차관·원유도입 요청으로 그 동안 쌓아온 노력이 자칫하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의외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이란은 지난7월 아가자데 석유부 장관 일행이 한국을 다녀간데 이어 이봉서 동자부장관에게 30억 달러의 차관을 요청했는데 10월초 이란의 현지신문과 방송에 한국이 차관을 주기로 한 것처럼 잘못보도 돼 정부 입징이 난처해진 것이다.
이장관은 이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차관 요청을 받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을 뿐이며 차관 요청자체도 현금차관인지, 다른 형태인지도 불확실한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이란의 거액차관 요청으로 한· 이란공동위원회 개최도 늦어지고 있다. 아가자데 장관은 그 동안 이 장관에게 『빨리 이란에 오라』고 독촉하는 내용의 편지를 두 차례나 보냈는데 이 장관은 지난26일 국회사정과 이란과의 현안정리 등을 들어 12월초에나 방문이 가능하다는 편지를 보냈다.
정부는 현재 이란에 대한 거액차관은 한국의 경제적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다만 개별프로젝트와 연결된 소액의 연불 수출자금 지원 등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란과의 경협에서 또 하나 고려할 사항은 이라크와의 관계다.
특히 이라크는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대사 급으로 격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론 대리대사 급이 부임해 오는 등 한국 측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자부는 이라크 산 원유는 경제성만 있다면 들여온다는 입장이나 유황성분이 많아 정유회사들이 꺼리고 있는 상태.
이란·이라크 종전 후 모처럼 회복된 양국과의 외교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양국사이에서「외줄 타기」를 해야하는 게 동자부의 고민인 것 같다. <박신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