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배는 부서지고 겨울은 다가오고… 해일 할퀸 서해어촌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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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배는 부서진 채 두 달이 넘도록 제대로 수리를 못하고 그물 등 어로장비 마저 해일에 모두 떠내려보내 성어기의 황금어장을 두고도 배를 못 띄우니 앞으로의 생계가 막막합니다』
『방파제가 무너지면서 간척지 농경지였던 문전옥답이 온통 모래밭으로 변해버렸어요. 올해 농사는 물론이고 농경지가 염해를 입어 내년농사까지도 못 짓게 됐으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8월31일과 9월17일 두 차례에 걸쳐 강풍파 해일이 덮친 충남 서해안의 대천 시와 보령군일대의 해일피해 어민과 농민들은 닥쳐오는 초겨울 날씨에 허탈감과 실의 속에 당국의 조속한 지원 대책만 바라고있다.
충남 대천 시 신혹동800일대 5백여 영세 어민들의 경우 배가 부서지고 고기잡이 그물이나 장비가 몽땅 10∼20m의 물기둥에 휩쓸려 간 후 속수무책으로 당국의 배려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
만선의 깃발을 단 고깃배와 만선의 꿈을 안고 출어 준비로 바쁜 배들로 술렁거렸던 신혹동 앞 바닷가에는 부서진 배의 잔해와 찢기고 할퀴어진 그물조각과 어로장구만이 차가운 바닷바람에 뒹굴고있어 황량하기 그지없다.
대천시 신혹동 일대의 피해상황은 당국의 공식집계만도 해안도로 1천7백20m, 해안축대 1천5백m, 어항축대 2백m가 내려앉았거나 유실돼버려 이것을 복구하는 데만도 22억 여원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또 어선피해만도 두 차례의 해일로 완파 50척, 반파 5l척이나 됐는데 대부분 5t급 미만의 영세선주들이다.
그러나 피해어민에 대한 당국의 대책은 현재까지 복구비 총액만 확정해 놓았을 뿐 개인별 지원명세는 아직 기준조차 정하지 못해 구체적 조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연중어획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0∼12월까지의 성어기를 맞는 어민들은 당국의 지원만 바라다 고기잡이철이 다 지나가게 될 것이라며 더욱 애태우고 있다.
어민 유병선씨(52·대천시 신혹동888) 는 『0· 7t급 배 1척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는데 해일피해로 파괴돼 당국의 지원을 기다렸으나 특별한 지원이 없어 최근 50만원의 사채를 얻어 2백만 원짜리의 배를 고쳤지만 조업을 제때 못해 애들의 학비는 물론 생계마저 걱정된다』 고 말했다.
또 하나 어민들의 큰 걱정은 각종 까다로운 행정절차.
지금 당장 당국의 지원이 있어 배를 건조하든가 새로 구입한다해도 검사기간이 늦고 절차가 까다로워 조업하는데는 앞으로도 1개월 이상 걸릴 판인데 많은 배가 한꺼번에 부서져 한정된 수리업소에서 배를 수리할 경우 황금조업기인 10∼11월에는 배를 출항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어민 유장근 씨(53·대천시 신혹동 878) 는 『논·밭도 없는 이곳 주민들은 배 1척에 6∼7명의 가족이 생계를 걸고 있는 순 전파된 어민들의 경우 대책이 없어 탄광촌을 기웃거리기도 하나 폐광으로 그마저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큰일』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한편 8월31일의 해일로 대천 간척지 제방50여m가 무너지면서 간척 농경지 7백ha가 완전히 침수돼 금년농사를 망친 보령군 주교면 송악리 일대 2천여 농가들도 걱정이 태산이기는 마찬가지.
해일이 휩쓸고 간 논에서는 금년 농사는 물론 염해 피해로 내년농사도 수확이 불가능한 상태이지만 당국의 지원대책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
이 때문에 영세주민 1백여 가구는 급한 대로 겨울을 나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외지로 일감을 찾아 나서고있다.
대천 시와 보령군 측은 『해일피해 등은 국비지원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중앙에서 지원이 늦어져 농어민들이 어려움을 겪고있다』며 『중앙관서에서 구체적인 예산편성과 자금지원이 내려오면 선박수리와 농경지피해보상을 서두르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툭하면 모든 책임을 중앙정부에만 떠넘기기에 급급한 이들의 처사가 피해 농어민의 마음을 더욱 춥고 쓸쓸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대천=김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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