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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없이 사라진 딸…실종 22년, 아빠는 오늘도 전단 뿌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 오전 경기도 오산시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딸 윤지현양의 앨범을 보여주는 아버지 윤봉원씨. 채혜선 기자

23일 오전 경기도 오산시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딸 윤지현양의 앨범을 보여주는 아버지 윤봉원씨. 채혜선 기자

아빠는 아직도 딸을 찾는다. “아빠 학교 다녀올게”라며 나갔던 초등학교 2학년 딸이었다.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고 흘러버린 세월이 22년. 그러나, 아버지는 지금 만나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아빠 닮은 서른살 딸의 얼굴을 마음속에 그리고 또 그려봤으니까.

22년 전 초등학생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 윤봉원(61)씨. 이제 남아 있는 딸의 흔적은 유치원 때까지 찍은 사진을 모아둔 앨범 한 권뿐이다. 지난 23일 경기도 오산시 자택에서 만난 그는 1999년 잃어버린 딸 윤지현(1991년생) 양의 사진을 다시 어루만졌다.

“이제 성인이 됐을 텐데 취직은 했는지, 결혼은 했는지, 그런 모습이 너무 보고 싶어요. 또래들만 봐도 아직도 울컥해요." 딸은 아버지의 가슴 속에서 간절한 그리움과 함께 자라고 있었다.

하교 후 사라진 초2 딸…22년간 행방불명 

윤지현양을 찾는 명함들. 채혜선 기자

윤지현양을 찾는 명함들. 채혜선 기자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윤양은 1999년 4월 14일 오후 1시쯤 학교 현장학습을 마치고 오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버지 윤씨는 딸을 잃어버린 뒤 몇 년간은 직장도 그만두고 전국을 뒤졌다. 곧 돌아오겠지, 돌아오겠지 하며 세월이 흘렀다. 전국 방방곡곡 아이가 있을 만한 보육시설 등을 찾으러 다녔다. “다 가봤다고는 못하겠지만, 안 가본 데는 없다”고 했다.

지현이가 사라진 몇 년 뒤 가정불화가 생겨 아내와도 헤어졌다. 윤씨는 “서로 탓하면서 말다툼이 늘어났다. 이런 가족이 정말 많다. 아동 실종은 가족 해체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윤양 남동생에게도 미안함만 남았다.

“밤낮으로 지현이를 찾으러 다니고, 주말에는 지방에 가고 했으니까 동생은 혼자 컸죠. 여태껏 가족 외식이나 여행 한 번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보다 더 힘들었을 게 동생이에요. 부모 사랑받으며 자랄 나이에…”

윤씨는 지금도 틈만 나면 딸의 얼굴이 새겨진 명함과 전단을 돌린다. 최대한 많은 사진을 담으려다 보니 명함 종류도 여러 개가 됐다. 윤씨가 “딸을 찾아달라”며 만든 전단이나 명함에는 “제보 또는 보호하는 분에게 꼭 후사하겠다”는 말만 적혀 있다. 사례금에 대한 안내는 없다. 윤씨는 “달라는 대로 다 주겠다는 뜻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딸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가정의 달 5월, ‘세계 실종 아동의 날’(5월 25일)이면 어김없이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그래서다. 딸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인터뷰한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해야 하지만, 이러다 보면 지현이를 알고 있는 누구라도 기사를 볼 것 같다”고 했다. 윤씨는 “요즘에는 언론사에서도 연락이 거의 오지 않는다. 작은 실마리라도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 딸 찾는 마음으로 도와주시길” 

윤지현양의 사진들. 채혜선 기자

윤지현양의 사진들. 채혜선 기자

경찰청에 따르면 실종 20년이 지난 장기 실종 아동은 663명(지난달 전국 기준)이다. 그 가족의 삶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게 윤씨의 말이다. “주변에선 ‘그만 좀 하라’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라고 말릴 때도 있다. 하지만, 부모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윤씨는 경찰 수사도 촉구했다. 그는 “올해는 경찰 수사팀에서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안내 문자만 오고 연락이 온 적도 없다. 가족이 먼저 요구를 해야 경찰이 움직이는 것 같다”면서다. 이어 “내 자식을 찾는다고 하면 그럴 수 있나. 전국 시설 입소자 DNA 전수 조사 등을 해서라도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22년의 세월 동안 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는 윤씨는 “아빠가 찾고 있으니까 빨리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라. 부모는 항상 기다리고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기사를 통해 딸에게 전하는 편지이자, 아버지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오산=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윤지현양을 찾는 과거 전단.

윤지현양을 찾는 과거 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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