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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잉태 때 앳된 마리아…그땐 열서너살이 결혼적령기였다[백성호의 현문우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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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예수뎐

알고 싶었다.

2000년 전의 이스라엘은 어떤 곳이었을까.

보고 싶었다.

예수가 나서, 자라고, ‘사랑’을 말하고, 끝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둔 땅. 그리고 온 세상을 적시는 생명으로 되살아난 땅.

거기에는 어떤 바람이 불고, 어떤 나무가 자라고, 또 어떻게 생긴 달이 떠오를까. 예수의 유적에는 과연 지금도 그의 숨결이 박혀 있을까.

예루살렘 올리브산에서 만난 외국인 순례객들이 통곡의 벽이 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바라보고 있다. 올리브 산에는 겟세마네가 있고, 건너편 골고다 언덕에는 공동묘지와 예수가 매달렸던 십자가 처형장이 있었다.

예루살렘 올리브산에서 만난 외국인 순례객들이 통곡의 벽이 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바라보고 있다. 올리브 산에는 겟세마네가 있고, 건너편 골고다 언덕에는 공동묘지와 예수가 매달렸던 십자가 처형장이 있었다.

그 모두가 궁금했다. 성서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장소들, 예수가 나고 자란 동네, 예루살렘의 골목과 갈릴리의 호숫가, 푸석푸석한 모래로 뒤덮여 있을 광야. 40일간 금식하며 예수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웠던 광야. 그 어디쯤 그가 머물던 동굴이 있지 않을까.

그곳으로 가서 만나고 싶었다. 땅을 밟아보고 싶었다. 어딘가 박혀있을 예수의 발자국. 그 위에 나의 발을 포개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떠났다.

※수년 전에 연재했던 ‘예수를 만나다’를 중앙일보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독자 요청이 꽤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도 시들지 않는 물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래서 다시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때의 글에, 지금의 단상을 덧붙여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22일부터 매주 토요일 중앙일보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글은 이스라엘 현장과 4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이야기로 풀어갑니다. 연재 순서는 크게 보면 복음서의 서사와 거의 같은 순서로 흘러갑니다. 4복음서를 펼쳐 놓고, 함께 묵상하고, 소통하고, 깨달으며 연재의 순례를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①예수 잉태한 마리아, 당시 풍습으로 열 서너 살

예수는 인간인가, 신인가. 그는 과연 사람의 아들일까, 아니면 신의 아들일까. ‘첫 단추’가 궁금했다. 예수가 태어난 땅,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거기서 ‘예수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

수태고지 당시 마리아는 알았을까. 훗날 십자가를 짊어진 채 절룩거리며 처형장으로 걸어가는 아들 예수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진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마리아가 만났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세워진 교회에 있는 조각상이다.

수태고지 당시 마리아는 알았을까. 훗날 십자가를 짊어진 채 절룩거리며 처형장으로 걸어가는 아들 예수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진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마리아가 만났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세워진 교회에 있는 조각상이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은 멀지 않았다. 남쪽으로 8㎞쯤 떨어져 있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거주지다. 베들레헴으로 가려면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실탄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과 장갑차가 검문소를 지키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둘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 수시로 왕래가 끊긴다.

검문소 이쪽과 저쪽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예루살렘은 깔끔한 유럽의 도시 같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수십 년은 낙후된 인상이었다. 마치 2020년대에 살다가 1980년대로 순식간에 돌아간 느낌이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낙후됐다. 비포장 길도 많았다.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가 달렸다. 차창 밖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보였다.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으로 태어났던 예수의 외모도 저랬겠지. 저렇게 생긴 눈에, 저런 코, 저런 머리칼에, 저런 피부를 가졌었겠지.

주위를 둘러봤다. 어쩌면 내가 탄 버스 기사처럼 생겼을까. 아니면 검문소를 통과할 때 여권을 검사하던 유대인 군인처럼 생겼을까. 갈수록 궁금해졌다. 예수는 과연 인간일까, 아니면 신일까. 그도 아니면 둘 다일까.

팔레스타인 소년이 나귀를 타고서 양떼를 몰고 있다. 예수 당시에도 흔한 풍경이었지 싶다.

팔레스타인 소년이 나귀를 타고서 양떼를 몰고 있다. 예수 당시에도 흔한 풍경이었지 싶다.

예수의 출생은 파격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마리아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 당대에 결혼이란 집안 간의 만남이었다. 결혼 상대자도 대부분 부모가 결정했다. 가문의 명예는 목숨과 바꿀 만큼 중요했다. 혼전 처녀가 임신을 한다면 대가는 가혹했다.

성서에는 간음한 여자를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는 대목이 나온다. 혼전 임신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남성들은 임신한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게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마리아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수태고지(受胎告知)는 마리아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건’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첫 마디가 그랬다. “두려워하지 마라.”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18~1882)의 그림 ‘수태고지’에서는 두려워하는 마리아가 여실히 보인다. 침대에 앉은 마리아는 천사의 ‘수태 통보’를 듣고 벽 쪽으로 몸을 움츠린다. 천사가 건네는 백합의 꽃말은 순결과 신성(神性)이다. 마리아는 그걸 선뜻 받지 못한다. 두 손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꽃을 받은 뒤에 자신에게 몰아칠 ‘운명의 폭풍’을 직감적으로 본 것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수태고지'. 그림 속 마리아는 천사가 건네는 백합을 선뜻 받지 못한다. 마리아의 표정에는 두려움의 기색이 역력하다. [중앙포토]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수태고지'. 그림 속 마리아는 천사가 건네는 백합을 선뜻 받지 못한다. 마리아의 표정에는 두려움의 기색이 역력하다. [중앙포토]

그림 속 마리아의 얼굴은 무척 앳되다.

마리아는 당시 몇 살이었을까. 그런 운명을 감당할만한 나이나 됐을까.

성서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 마리아가 몇 살인지, 예수와 몇 살 차이인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

당시 풍습을 통한 추정은 가능하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다. 양가에서 결혼을 승낙하고, 예식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마리아는 결혼적령기였을 터이다.

당시 갈릴리 지방에서 여성은 첫 월경을 하는 나이가 되면 시집을 갔다고 한다. 그게 열서너 살이다.

그때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으니 출산 도중 목숨을 잃는 여성도 많았을 터이다. 여성의 출가 연령도 낮았다.

그럼에도 열서너 살이면 아직 어리지 않았을까. 성령에 의해 임신이 되는 ‘초월적 사건’을 목숨을 걸고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았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기작인 '수태고지'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 바르톨로메오 아 올리베토 교회의 제단화로서 그려진 작품이다. 지금은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기작인 '수태고지'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 바르톨로메오 아 올리베토 교회의 제단화로서 그려진 작품이다. 지금은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천사 가브리엘은 아이의 이름까지 불러주었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Jesus)라 해라.” 한국말로 바꾸면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철수’라 해라”쯤 된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예수’는 그만큼 흔한 이름이었다.

로마 시대의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7?~100?)는 『유대 전쟁사』에서 “당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니 국어책에 등장했던 ‘철수’나 ‘영희’처럼 유대인에게 흔하고 친숙한 이름이 바로 예수의 이름이었다.

‘예수’는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는 뜻이다. 버스 안에서 읊조려 봤다. ‘예수 그리스도’를 ‘철수 그리스도’나 ‘영희 그리스도’로. 그렇게 한국식으로 바꾸어 불렀더니 친근한 어감이 확 다가왔다.

구약성서는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됐다. 유대 민족이 오랜 세월 바빌론의 포로가 되면서 말이 바뀌었다. 예수 당시에는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는 아니었다. 구약을 연구하는 일부 율법학자들만 익히는 문자 언어였다.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밤에 예수가 피땀을 흘리며 기도했다는 겟세마네의 올리브 동산. 지금도 밑둥이 아주 굵은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서 있다.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밤에 예수가 피땀을 흘리며 기도했다는 겟세마네의 올리브 동산. 지금도 밑둥이 아주 굵은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서 있다.

훗날 이스라엘의 건국(1948년)과 함께 히브리어가 다시 유대인의 공용어가 됐다. 그럼 예수가 사용한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 광야에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루살렘의 골목에서 예수가 말하고 들었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람어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람어와 그리스어를 썼다. 그리스어는 외교용 언어였고, 지중해 지역에선 공용어였다. 이 때문에 신약성서는 처음 그리스어로 기록됐다. 예수 당시에는 일부 식자층이 그리스어를 썼고, 대다수 평민은 아람어를 썼다.

예수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썼던 언어는 다름 아닌 아람어였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여호수아(Yehoshuah)’이고, 아람어로는 ‘예수아(Yeshua)’다. 그러니 마리아와 요셉이, 갈릴리의 이웃들이 어린 예수를 부를 때는 “예수아! 예수아!”라고 불렀을 터이다.

버스는 덜커덩거리며 예수의 탄생지로 알려진 베들레헴으로 갔다. 물음이 올라왔다. 예수는 과연 신의 아들인가, 아니면 사람의 아들인가. 예수가 태어났다는 구유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글·사진=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짧은 생각

사람들은 따집니다. 처녀 잉태가 가능한 일인가. 그게 하느님이 운용하는 섭리에 합당한 일인가. 그게 과연 과학적인가. 그런 일화가 성서에는 종종 등장합니다. 성서를 읽다가도 어떤 사람은 거기에 막혀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초자연적 현상에만 매달려 종교를 기복의 수단으로만 삼기도 합니다.

저는 성서에서 그런 일화를 만날 때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눈을 감습니다. 왜냐고요? 찾기 위해서입니다. 성서의 초월적 일화 속에 깃들어 있는 메시지를 깨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 현상보다,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 뜻에 집중합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건 결국, 거기에 담겨 있는 ‘하늘의 뜻’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자랐던 이스라엘의 나사렛에는 수태고지 교회가 있다. 교회가 있는 장소가 원래 결혼 전 마리아가 살던 집터라고 한다. 위 사진은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다는 장소다. 오른편에 수태고지 일화를 담은 그림도 보인다.

예수가 자랐던 이스라엘의 나사렛에는 수태고지 교회가 있다. 교회가 있는 장소가 원래 결혼 전 마리아가 살던 집터라고 한다. 위 사진은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다는 장소다. 오른편에 수태고지 일화를 담은 그림도 보인다.

마리아의 수태고지 일화와 마주할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제 안에서 계속 메아리치는 소리는 하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운명의 폭풍 앞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건네는 한 마디입니다. 마리아를 향한 하늘의 메시지 속에, 저는 우리를 향한 하늘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고 봅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으려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우리도 그렇게 억장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삶의 폭풍 앞에서 무참하게 쪼그라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서도 이 일화는 하늘의 소리를 건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철수야,”
“두려워하지 마라, 영희야.”

그렇게 마리아의 이름에, 나의 이름을 대입해 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OO야.”

다시 눈을 감습니다. 혹시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나의 내면으로 깊숙히 밀려오는 본질적 위안의 파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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