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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투기행태 들여다보니…사설펀드 동원해 수십채 사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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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서울 강남구 한 재건축 아파트 시공사 K과장은 조합원 명부를 점검하다 한 조합원이 10채나 보유한 사실을 보고 깜짝 놀랐다. K과장은 "투자자들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전세 보증금이나 은행 대출을 안고 2채 이상을 보유한 사람들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최근 강남권 아파트값이 급등한 데는 공급부족 못지 않게 투기수요나 가수요가 만연한 것도 큰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투기세력들은 2~3년 전부터 뭉칫돈을 동원하거나 사설펀드를 조성한 뒤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들인 사례가 적지 않다.

이들은 정부의 초강도 대책 발표가 임박하자 매도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최근 재건축 단지에서 나온 매물의 60~70%는 다주택자 소유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건축 단지 2주택자 수두룩=송파구 한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2채 이상 보유한 조합원이 50여명, 5채 이상 가진 사람도 2~3명은 된다고 조합 측은 밝혔다.

잠실동 한 부동산중개업소 金모(46)사장은 "1년 전만 해도 전세와 대출을 안으면 1억원으로 아파트를 살 수 있어 여러 채 산 사람이 많다"며"요즘 나오는 물건은 대부분 다주택자들의 매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지역 한 단지만 집중 매입하기보다는 강남권 다른 재건축에 분산 투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실제 보유 아파트는 더 많을 수 있다. 가락동의 한 중개업자는 "투기목적으로 매입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임대주택 사업자로 등록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투기목적 사설펀드도 극성=송파구 중개업소 L사장은 최근 강남권에서 21채의 아파트를 보유한 고객으로부터 매도 문의를 받았다.

이들 아파트는 이 고객이 3년 전부터 사설 부동산 펀드에 가입해 사들인 것으로 5채는 자신 소유, 다른 16채는 펀드 회원들에게 명의를 빌려준 것이라는 게 L사장의 전언이다.

중개업자나 사채업자가 낀 부동산 사설펀드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시장 불안의 요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20억~50억원의 자금을 조성해 조합 설립인가 등 재료가 있는 아파트를 골라 5~10채 사들인 뒤 수익을 나누는 수법을 이용한다. 소유권 보전을 위해 가등기.가압류.근저당 설정 등의 장치를 마련해놓거나 아예 계약 후 미등기 전매로 되팔기도 한다고 중개업자들은 전한다.

강남구의 한 중개업자는 "일부 펀드들은 시세를 주도하고 있는 대치동에서 호가가 뛰면 곧바로 잠실.고덕.반포동 등 인근 지역 아파트를 사들인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집 사주는 사례도=일부 중산층은 집값이 급등하자 자녀에게 강남권 아파트를 사주고 있지만 증여세를 제대로 내는 사람은 드물다. 현행 세법에는 성인 자녀 한명당 10년간 3천만원 이하를 증여할 경우 비과세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실제 강남구 자영업자 朴모(67)씨는 올 초 아들 두명에게 강남권 30평형대 아파트를 한 채씩 사줬지만 증여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그는 "시세 5억원짜리 아파트로 전세와 대출금을 제외한 2억원 정도씩 보태줬다"며 "아들이 직장에 다니고 30세가 넘는데 세무조사를 받겠느냐"고 말했다. 혹시 자금 추적을 받을 까 봐 대출 이자는 아들이 내도록 하고 그 대신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朴씨는 전했다.

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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