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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오랫동안 쉬면 역류성 식도염 의심을

중앙일보

입력

식도·위 괄약근 약해져 … 툭하면 신물 넘어와
서구식 식생활·흡연 등 원인
끼는 옷 피하고 제산제로 치료

15일 강남성모병원을 찾은 회사원 김모(38)씨는 담당 의사에게 “2년 전부터 명치 끝에서 입쪽으로 신물이 넘어온다”며 “마치 식도가 타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물을 마시면 속이 덜 쓰리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라고 한다. 두달 전부터는 밤중에도 속이 쓰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내시경 검사 결과 역류성 식도염으로 진단됐다.

주부 양모(47·경기 성남)씨도 “목소리가 쉬고 목에 항상 뭔가가 걸려있는 느낌”으로 1년 이상 고통을 받고 있다. 내시경 검사에서 후두·식도가 모두 정상인 것으로 판정됐으나 24시간 식도 산도 검사에선 “하루중 2시간 이상 위산을 포함한 위액이 역류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가 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1998년 1454명에서 2001년 1920명, 지난해 4153명으로 환자수가 늘어났다. 기름진 음식.육류를 위주로 한 서구식 식생활과 음주.흡연 탓이다. 빨리 먹고 과식하며 간식을 즐기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왜 역류하나 = 우리가 섭취한 음식은 식도를 거쳐 위로 내려간다. 식도와 위 사이엔 식도 괄약근이란 '문'이 있는데 이 문은 밥을 먹거나 트림할 때만 열리는 것이 정상. 그러나 식도 괄약근의 조이는 힘이 약해지는 등 이상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문이 열려 위 내용물이 다시 식도로 되돌아간다. 이때 산도(酸度)가 높은 위산이 함께 식도 쪽으로 올라가 식도 점막을 지속적으로 자극한 결과가 바로 역류성 식도염이다.

강남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최명규 교수는 "역류성 식도염을 방치하면 식도염.식도궤양.협착.식도선암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역류된 위산이 식도를 지나 목까지 넘어오면 목이 쉬거나 후두염.천식.만성 기침의 원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진단은 이렇게 = "월드컵 보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몇 달에 한 번씩…." 이런 사람은 역류성 식도염 환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매주 한 번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 받을 정도로 심한 속쓰림이 몇 달 이상 지속돼야 '1차 의심 대상'으로 분류된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풍렬 교수는 "눕거나 앞으로 구부릴 때 쓰린 증상이 더 심해지고, 물을 마시거나 제산제를 복용할 때 나아진다면 '혐의'가 더 짙어진다"고 설명한다. 쉰 목소리와 목의 이물감도 중요한 단서다. 원인 불명의 쉰 목소리는 약 30%가 위.식도 역류와 관련이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병이 의심되면 일단 내시경 검사를 통해 식도 점막의 손상 여부를 확인한다. 그러나 내시경 검사만으로 혐의를 완전히 벗기는 어렵다. 환자의 반수 이상이 이 검사에서 '정상'으로 판정돼서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24시간 식도 산도검사(식도에 산을 측정할 수 있는 가는 관을 넣어 24시간 동안 기록)와 식도 내압검사(식도의 수축운동을 기록)다.

◆식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약 = 역류성 식도염은 기본적으로 '서양인의 질환'이다. 요즘 국내에서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 성인의 유병률이 3.5%에 그친다(강남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이에 비해 구미에선 흔한 질환이다. 미국인은 60%가 이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따라서 과거 우리 선조의 식생활과 생활 습관에서 역류성 식도염의 예방.치료를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림대의료원 강동성심병원 소화기내과 박준용 교수는 "서양인이 즐기는 기름진 음식과 초콜릿.커피.홍차.케첩.튀김음식.탄산음료.박하 등을 멀리 하는 것이 좋다"며 "이런 식품들은 위에서 소장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식도괄약근의 조이는 힘을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음식을 먹고 바로 눕거나 잠자리에 드는 습관도 금물. 꼭 끼는 옷도 피한다. 위.식도 역류는 식사 뒤 주로 발생하므로 식후 2시간은 지난 뒤에 눕는 것이 원칙이다. 과식과 불규칙한 식사 자제, 체중 조절, 금연도 중요하다. 담배를 피우면 침의 분비가 줄어들어 침에 의해 위산이 중화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과식.과체중.비만.불규칙한 식사는 복부의 압력을 높여 위에 든 음식이 식도 쪽으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강화시킨다.

생활습관의 개선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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