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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무릎' 진술 바꿨다고 추행 무죄…대법 "다시 재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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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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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후 택시 안에서 부하를 추행한 혐의를 받은 전 공군 중령이 2심에서 추행 혐의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심 판결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점은 잘못됐다”라며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성추행으로 해임당하자 목격자 고소한 중령

추행은 2014년 공군 중령 A씨가 하사 B씨와 함께 부대 회식 후 택시를 타고 복귀한 날 발생했다. B씨는 택시 뒷좌석에 A씨와 나란히 탔는 데, A씨가 B씨의 오른쪽 다리와 손을 만졌고, B씨가 이를 제지하려 A씨 손을 잡자 다시 손을 빼서 B씨 손을 만졌다. 택시에서 내린 뒤에도 A씨를 부축하는 B씨의 허리에 손을 얹어 추행했다고 B씨는 주장했다.

반면 A씨는 자신은 택시 앞자리에 타서 추행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B씨가 처음에 조사를 받을 때는 A씨가 손을 만졌다고 하더니, 다음에는 무릎을 만졌다고 말을 바꿨고, 법정에서는 다리를 쓰다듬었다고 진술한다며 “없던 사실을 꾸며내니 추행 정도를 점점 강하게 진술한다”고 B씨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했다. 이와 더불어 A씨는 당시 부대 앞에서 보초를 서며 “A중령이 택시 뒷좌석에서 내리는 걸 봤다”고 진술한 C병사를 고소한 혐의(무고), 회식을 한 식당 주인 D씨에게 “내가 택시 앞 좌석에 탄 걸 봤다고 법정에서 진술해달라”고 허위 진술을 요구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B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비록 B씨 진술 중 세부사항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8차례가 넘게 추행 사실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흐릿해지거나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B씨 진술의 변화가 성추행 사실에 대한 신빙성을 탄핵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또 목격자 C씨나 증인 D씨의 진술이 일관돼, A씨가 무고를 하고 허위 증언을 시킨 혐의도 모두 인정할 수 있다고 보고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피고인 거짓말에 “그럴 수 있다”한 2심

그런데 2심에서는 ‘추행’ 부분에 대한 판단을 전혀 다르게 했다. 2심은 “B씨가 당한 추행은 비교적 단순하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제했다. 항소심은 “B씨 진술 변화는 단순히 추행의 순서를 착각한 게 아니라 전혀 새로운 진술을 하는 것”이라며 B씨 말을 믿지 않았다. 또 B씨가 처음에는 성추행 사실을 말하지 않다가 이를 털어놓은 시점은 A씨로부터 업무상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시점이었다며 B씨가 악의적으로 A씨에 대한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A씨가 C씨의 목격담을 거짓말로 몰고, D씨에게 허위 진술을 요구한 점에 대해서는 “그럴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억울하게 형사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가 결백을 밝히고자 강력한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건 인지상정”이라며 “결백을 주장하려고 추행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주장했을 수 있다”고 했다. A씨 주장 중 일부가 거짓이더라도 이를 반드시 B씨의 피해 진술이 사실인 근거로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다. 2심은 추행 관련 혐의는 무죄로, 무고 및 위증교사 혐의는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피해 진술 크게 다르지 않다, 배척 안 돼”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다시 한번 뒤집었다. B씨가 추행 부위를 손→손과 무릎→무릎으로 바꿔 말하고, 허리 부위를 추가로 진술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당시 택시 안에서 B씨는 손을 무릎부위에 두고 있었고, 그 기억을 떠올려 추가 진술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진술 자체로 B씨 주장이 모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또 B씨의 신분상 A씨의 추행 행위를 밝히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피해 진술을 꺼리거나, 추행 정도를 축소해서 말했을 가능성도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A씨의 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결한 2심에 대해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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