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급차 함부로 부르면 과태료

중앙일보

입력

2003년 6월 8일 오후 10시30분, 서울 마포소방서에 응급구조 전화가 걸려왔다. "고관절 탈골 환자가 있으니 급히 병원으로 후송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다급하게 전화를 건 황모씨의 집에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환자라는 황씨가 술 냄새를 풍기며 목발을 짚은 채 걸어나왔기 때문이다.

황씨는 후송 도중에도 "지갑을 놓고 왔으니 돌아가자"거나 "화장실이 급하니 차를 세우라"는 등 황당한 요구를 계속했다. 황씨는 요즘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응급구조 요청'을 한다는 것이 소방서의 설명이다.

대구에 사는 심모(51.여)씨도 구급차 단골손님이다. 주로 가슴 통증을 호소한다. 하지만 인근 병원으로 이송해 주면 10분도 안 돼 혼자 걸어나와 돌아다닌다. 구급대 관계자는 "가끔 인근 병원이 싫다며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자는 요구도 하는데 꼭 택시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해에만 심씨의 전화가 15차례 접수됐다.

이처럼 119구급대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자 소방방재청은 24일 악성 이용자에 대해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119구급차가 출동한 횟수는 149만여 건. 10년 전보다 2.5배 이상 늘었다. 소방방재청은 올해부터 출동일지를 바꿔 응급환자가 아닌데도 출동을 요청하는 경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직 정확한 집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출동 요청의 30%가량이 만성질환자거나 악성.상습 이용자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소방방재청은 밝혔다.

소방방재청은 이를 위해 소방기본법에 '(119구급차는) 본래 사용 목적 외에 출동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할 방침이다. 악의적 이용자로 판명될 경우 화재 허위신고와 같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벌칙 조항도 추가하기로 했다. 다만 무리하게 적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습성과 고의성이 명백히 인정될 경우에만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는 119구급차 사용을 유료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장비와 인력 등 구급대를 운영하고 응급처치 등 실질적인 의료 행위를 하는 만큼 최소한의 비용은 징수한다는 취지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주에 따라 많게는 70만원 이상의 사용료를 받는다.

구급차 이용을 유료화하면 꼭 필요한 사람이 비용 때문에 119구급차를 이용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제때 응급구조를 받지 못해 사회 전체적인 의료비용이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유료화된 경비에 대해서는 대부분 민간 의료보험을 통해 지급하는 구조"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 의료보험 체계의 개편과 함께 신중하게 접근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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