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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초등생들에 초경에 대해 물었더니…‘오매불망’,‘파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47)

“나에게 월경은 ○○이다!”라는 질문에 여성이든 남성이든 각자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인 열다섯 살 때의 여름이다. 친구 집 마당에 앉아 열무비빔밥을 먹는데 배 속에서 감지된 처음으로 경험한 느낌. 밥을 먹다가 급히 화장실에 가 보니 붉은 핏덩어리가 팬티에 묻어 있었다. ‘나 이제 죽는 거구나’ 너무 놀라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다행히 친구는 지난해부터 월경을 시작해 생리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 주었다. 나의 첫 성교육 선생이었던 것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정자, 난자, 월경은 그저 글자였을 뿐 내가 현실에서 맞닥뜨린 문제와는 다른 별개의 이야기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집에서도 ‘너도 이젠 월경을 할 거야’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월경은 40년 넘게 평균 28일을 주기로 내 삶의 통과의례가 됐다.

청소년들은 여성의 생리에 대해 비교적 자연스럽고 몸의 기능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는 여성의 생리가 혐오의 근거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 pixabay]

청소년들은 여성의 생리에 대해 비교적 자연스럽고 몸의 기능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는 여성의 생리가 혐오의 근거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 pixabay]

열다섯 살 때부터 완경까지(사실은 완경 후까지) 나의 월경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생리 기간엔 되도록 외출을 삼갔다. 체육시간은 종종 스탠드에 앉아만 있었고, 때로는 생리통과 두통으로 진통제를 먹어야 견딜 수 있었다. 첫 해외여행에서 본 경이로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내 피로 물들일까봐 물에 발도 담그지 않고 내내 구경만 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40년 넘게 생리 기간은 늘 내 생리혈이 보일까 봐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 경험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 세상 절반의 여성이 비슷하게 겪어 내는 일들이다.

최근 초등학교 학생들과 강의를 진행하며 같은 질문을 했다. “나에게 월경은 ○○이다!”라는 질문에 내가 예상한 질문과 다른 답들이 여러 개 있었다. 나는 나의 과거 경험처럼 ‘귀찮음’, ‘부끄러움’, ‘고통’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물론 그런 답도 있었지만) ‘파티’, ‘기대’, ‘오매불망’ 이런 긍정적 답변을 하는 학생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왜 이런 답변을 썼는지 물어봤더니 다른 친구들이 다 생리를 하는데 나만 안 하고 있어서 오매불망 첫 생리의 날이 기다려진다, 혹은 부모님이 ‘초경 파티’를 성대하게 해 주신다고 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이한 답을 쓴 남학생이 있었는데 ‘파란 액체’였다. 그 이유를 물으니 TV 광고에서 생리대를 광고할 때 생리대에 파란색 액체가 묻어 있어 여자의 월경이 파란색인 줄 알았다는 학생도 있었다. 생리혈의 새빨간 피가 파란색 피로 둔갑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여성의 생리에 대해 비교적 자연스럽고 몸의 기능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럽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는 여성의 생리가 혐오의 근거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이 생리를 한다는 것은 열등함을 나타내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다” 고 주장했고, “월경하는 여성이 앉았던 나무의 열매는 떨어지고, 그녀가 본 거울은 광택이 사라지며, 강철은 부식되고, 상아의 빛깔은 탁해진다”(『박물지』 20권 23장 중)고 했다.

지금 이런 말을 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이라며 웃음을 터뜨릴 수 있을지 모르나 수백 년 동안 이렇듯 생리혈에 대해 혐오하는 문화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해왔다. 최근에도 인도, 네팔 같은 나라는 여성이 생리하는 동안 격리된다. 생리용품을 구할 수도 없고, 움막 같은 곳에 격리돼 그냥 피를 흘리고 있다. 왜? 불결하고 남성과 동물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은 한 달에 한 번 일주일 동안 결석하게 되고 그것은 학업 부진, 학업 포기로 이어져 더욱 취약한 상태로 머물게 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2016년 생리대가 비싸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쓰고 있는 ‘깔창 생리대’가 이슈가 돼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생리대의 문제를 권리로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나 영국 같은 나라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매달 무료로 생리대를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지급하는 몇몇 지자체가 있기는 하나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여성의 월경에 대한 혐오적 문화는 젠더 위계질서의 산물이 돼 결국 여성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차원의 섹슈얼리티 생산과 젠더 차별로까지 연결된다. [사진 unsplash]

여성의 월경에 대한 혐오적 문화는 젠더 위계질서의 산물이 돼 결국 여성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차원의 섹슈얼리티 생산과 젠더 차별로까지 연결된다. [사진 unsplash]

대부분의 공중화장실에는 휴지가 마련돼 있다. (휴지가 없는 학교 화장실도 많기는 하지만) 휴지처럼 생리대는 필수 소비재다. 그런데 이 필수 소비재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소비자보호원의 조사를 보니 한국의 일회용 생리대 가격은 평균 331원꼴이었다. 일본, 미국이 181원 정도 하고 있다 하니 훨씬 더 비싼 것이다. 또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성분이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보도는 심심치 않게 들리는 보도이고, 이를 피해 유기농 생리대를 사용한다든지 혹은 수입 생리대를 선택할 때는 개당 600~900원가량을 지불하게 된다. 생리대 사용 문제 또한 평등함이 담겨 있지 않다.

여성이 간혹 짜증을 내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면 “너 그날이야?”, “너 생리하니?”란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여성이 생리할 때는 호르몬 작용 때문에 감정이 예민해질 수 있다. 그런데 자칫 이런 말은 어떤 감정의 표현이 존중 혹은 수용돼야 할 때 ‘생리’라는 현상으로 퉁쳐버리거나 과소평가되기도 하고, 생리라는 원인으로 문제를 덮어버리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더 나아가 생리작용을 이용해 여성을 공격하기도 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월경의 혈은 불결함, 냄새남, 수치심 같은 부정적 단어와 맞물려 있었다. 그래서 비밀로 해야 했고, 생리통으로 인해 아파도 그냥 몸이 안 좋다며 참게 됐다. 생리대가 필요해 구입할 때도 뭔가 금기시되는 물건을 사듯이 다른 사람이 없는 틈에 재빨리 사서 검은 봉지에 담아 뛰어들어온 기억이 있다. 여성의 월경에 대한 혐오적 문화는 젠더 위계질서의 산물이 돼 결국 여성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차원의 섹슈얼리티 생산과 젠더 차별로까지 연결돼 있음을 위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경험하고 피할 수 없는 주제 월경. 나에게 월경은 ○○이다!”에서 더는 생리는 속삭이거나, 수치스럽거나, 금기시되거나, ‘그날’로 은유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 아니어야 한다. 생리에 대해 더 많이 떠들고, 경험을 듣고 하면서 생리가 무엇인지 배우며, 이것을 이용해 놀리거나 희롱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또한 몸의 기능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으니 더럽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함을 알고, 월경 용품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하며, 자신에게 알맞은 생리용품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에 관한 오픈된 논의의 장 혹은 교육이 더 많이 마련돼야겠다. 더불어 여성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월경이 보편적 권리로서 지켜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을 해야 할 것이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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