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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군인으로 살려고 했던 트랜스젠더의 죽음이 남긴 것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45) 

퀴어 혐오를 그린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Boys Don’t Cry, 1999년작)’는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20년 전에 보았는데,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그 당시 미국 사회의 시선을 잘 알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이 오랜 기간 잊히지 않은 영화였다. 최근 트랜스젠더이면서 군인으로 살고자 했던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접하고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부정당할 때 한 사람의 존엄이 얼마나 처절하게 망가지는지 잘 보여준다. [사진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스틸]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부정당할 때 한 사람의 존엄이 얼마나 처절하게 망가지는지 잘 보여준다. [사진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스틸]

주인공인 브랜든 티나는 원래티나 브랜든이라는 이름의 여자였다. 브랜든이 남자로 행세하는 동기는 딱히 설명할 수 없다. 사내의 차림새로 거울을 볼 때 자신이 덜 낯설어 보이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자가 편하고 좋으며, 여성에게 관심이 간다. 브랜든은 성전환 수술을 하고 싶어 큰돈을 모아야 함을 걱정하면서 호르몬 치료 중이었다. 절도 혐의로 수배 중이던 브랜든은 고향을 떠나 폴즈 시티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브랜든이라는 남성 젠더로 생활하게 된다. 그 작은 도시에서 라나 티셀이라는 여성을 만나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점점 남성 브랜든이 돼 간다.

영화 속에서 브랜든은 비수술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 위해 가슴을 꽁꽁 가리고 생리를 숨긴다. 모두가 브랜든을 남성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다 과속운전으로 경찰에 잡히면서 신분증이 위조된 것으로 판명 나고, 그가 ‘지정 성별 여성’임이 밝혀진다. 브랜든과 사랑에 빠진 라나를 평소 좋아했던 존과 그의 친구 톰은 브랜든이 여자라는 사실을 라나를 포함한 친구들에게 밝히려고 강제로 그의 옷을 벗겨 성기를 확인시킨다. 존과 톰은 옷을 거의 벗겨 여성형 성기를 확인한 후엔 여성으로 간주하고 폭행과 강간을 한다.

브랜든은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과 실제 그가 살고자 하는 삶이 달랐다. 그는 여성의 성기를 갖고 있었지만, 그가 원하는 젠더 수행은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자동차로 질주하다 과속 딱지를 받고, 연인과 행복하게 데이트하기를 희망하는 남성 젠더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을 뿐이다.

여기서 브랜든은 여성인가? 남성인가? 각기 남성과 여성이라는 해부학적 생식기를 갖고 태어났다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진짜 남자’, ‘진짜 여자’ 두 가지로만 국한해 성을 가둬놓을 수 있는 문제인가? 지정 성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처럼 젠더 수행을 하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브랜든처럼 외과 시술이 없다면 트랜스젠더가 아닌가?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여성폭력 그 무엇을 다룬 것인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이런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20년 전 미국 소도시에서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한 젊은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부정당할 때 한 사람의 존엄이 얼마나 처절하게 망가지는지를 너무도 잘 드러내고 있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으로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가하는 차별의 벽이 얼마나 견고하고,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고 있는지 알게 됐다. [사진 unsplash]

변희수 하사의 죽음으로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가하는 차별의 벽이 얼마나 견고하고,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고 있는지 알게 됐다. [사진 unsplash]

요즘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전 세계에서 여전히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비극적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65%는 사회에서 각종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고 있다. 자살률이 무척 높은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자살은 일반인보다 9배가 더 높다는 통계도 있다.

며칠 전 한국에서 군인으로 살고자 했던 트랜스젠더 젊은이 변희수 하사가 죽음을 선택했다. 군인이자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기갑 돌파력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당당히 맞서겠다면서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국가는 끝내 정신질환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평범한 군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고인의 죽음으로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가하는 차별의 벽이 얼마나 견고하고,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편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침대 사이즈가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잘못된 것으로 여겨 목과 다리를 잘라 살해하는 그리스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처럼. 내 안의 편견은 자신이 만든 비정상의 기준을 들이대면서 여기에서 벗어난 타인은 난도질한다. 혼전 임신과 미혼모, 이혼녀에 대해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결손가정 아이라고 수군거리며 낙인을 찍는다. 이런 사회적 행태가 얼마나 당사자에게 폭력적인지를 깨닫지 못한다.

모든 사회 구성원은 편견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내 안의 편견은 자신이 만든 비정상의 기준을 들이대면서 여기서 벗어난 타인은 난도질한다. 그런 편견은 얼마나 당사자에게 폭력적인지 깨닫지 못한다. [사진 pixabay]

모든 사회 구성원은 편견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내 안의 편견은 자신이 만든 비정상의 기준을 들이대면서 여기서 벗어난 타인은 난도질한다. 그런 편견은 얼마나 당사자에게 폭력적인지 깨닫지 못한다. [사진 pixabay]

피부색이 다르건, 장애인이건, 이주 노동자이건 온전한 인권을 지닌 한 시민에게 혐오와 차별을 가하는 건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멈춰야 한다. 우리는 모두 더는 성 소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차별을 멈추게 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

현재 한국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노동의 차별 금지 같은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하는데 많은 사람이 굳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개별법은 특정한 차별 사유를 구체화해 심화시켰지만, 차별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 법이 생긴다고 해서 모든 차별이 갑자기 싹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을 지켜주는 첫 보호막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빨리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몇 해 전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교장 선생님과 잠깐 차를 마시며 했던 대화가 자꾸 마음이 쓰인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 학생 중 6학년 남학생인데 자신의 몸 안에 여자가 있는 것 같다”며 “자꾸 귀걸이와 목걸이를 하고 학교에 가고, 손에 매니큐어를 바르며 손톱 색깔이 바뀐 것을 자랑하는 남자 아이가 있다”고 했다. 집에서도 그런 문제로 부모와 상당한 갈등이 있고, 학교에서도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고민이셨다.

“저 아이는 왜 저런 행동을 할까요? 이럴 때 교사가 학생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저의 소심한 답변은 “성소수자는 왜, 무엇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이유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해요. 내가 이성애를 왜, 무엇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듯 동성애도 내가 선택해서 동성애자가 되지 않는다고 해요. 왜, 무엇 때문이라기보다 그 아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잘 찾아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찾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짧은 답변이 과연 그 학생에게 어떤 도움이 됐을지, 부디 그 아이는 자신을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고 그 존재로서 인정받고 살고 있기를…. 변희수 하사의 허망한 죽음을 접하면서 더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삶을 버리게 하는 혐오 문화로부터 우리가 모두 벗어나길 바란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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