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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내 아이 때릴 수 있는 사람”가정의 야비한 인권 유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43)

생후 16개월인 입양 아동을 학대해 사망케 한 ‘정인이 사건’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 나까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아동학대가 이제 그만 멈췄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정인이 사건을 마주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만났던 교육생들에게 송구한 마음을 갖게 됐다. 왜냐하면 최근까지도 아동 인권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여기저기서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여러분이 집에 있을 때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잘 들어 보니 아랫집에서 아이가 부모로부터 맞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요?” “‘즉시’ 112에 신고해야 합니다. 아동학대를 막으려면 우리가 모두 신고 의무자가 돼야 합니다.” 이렇게 24시간 언제든지 ‘즉시’ 신고해 줄 것을 강조했다. 우리가 모두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아동학대를 발견하고 신고해 아동학대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있었던 안타까운 아동학대 사건들의 전후를 살펴보면 내가 했던 말들이 교육생들에게 허언했던 꼴이 돼버렸다. 왜냐하면 정인이 사건만 보더라도 수차례에 걸쳐 아동학대를 ‘즉시’ 신고했지만, 그 책무성을 가진 그 누구도 아이를 구하지 못한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에 관한 아주 훌륭한 법과 매뉴얼이 갖춰져 있지만, 아동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돼주지 못하고 있다. [사진 unsplash]

아동학대에 관한 아주 훌륭한 법과 매뉴얼이 갖춰져 있지만, 아동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돼주지 못하고 있다. [사진 unsplash]

‘아동과 관련된 법은 아동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2013년, 여덟 살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소풍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다 엄마에게 맞아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부러진 갈비뼈는 폐로 뚫고 들어가 결국 사망했다. 그 당시 이 사건은 가정에서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했고, 사망을 예견할 수 있을 정도의 아동학대는 무기징역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아동학대 특례법(2014년)이 만들어졌다.

2015년 11월부터 3개월간 추운 화장실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저체온증으로 서서히 숨을 거둔 아이가 있었다. 부모는 아동학대를 은폐하기 위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초등학교 예비소집 때 학생의 참석이 의무화됐고, 만약 불참할 경우 사안에 따라 경찰 수사까지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리는 끊이지 않고 가정, 학교, 어린이집 등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참혹한 소식을 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2020년 6월 경남 창녕에서는 테라스에 쇠사슬로 목이 묶여 지내면서 집안의 허드렛일을 전담하고 굶겨 온 부모의 학대를 피해 지붕을 타고 탈출하는 아홉 살 아이의 소식이 있었다. 또 비슷한 시기에 거짓말했다는 이유로 아이를 여행 가방 안에 일곱 시간이나 가둬 사망하게 한 학대 사건도 있었다. 이 잔혹한 사건으로 인해 민법상 부모의 징계권을 개정하는 절차가 공식적인 논의에 들어가게 됐고, 아동학대 행위자에게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하기도 했다. 이렇듯 조금씩 강화되는 법은 불쌍한 영혼의 목숨값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대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학대 행위자의 엄벌과 문제점을 말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8일 다시 아동학대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물론 처벌의 강화는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법이 없었을까? 이미 아동학대에 관한 아주 훌륭한 법과 매뉴얼이 갖춰져 있다. 그렇지만 아동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돼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울타리를 더 만드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울타리 역할이 제대로 되기 위해선 그 안에 숨은 구멍들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아동을 분리할 곳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동을 분리하는 법을 만들어낸다면 이것 또한 실효성 없는 법이 될 것이다. [사진 unsplash]

아동을 분리할 곳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동을 분리하는 법을 만들어낸다면 이것 또한 실효성 없는 법이 될 것이다. [사진 unsplash]

아동학대의 경우 가정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고, 가정 내 친권자가 학대 행위자인 경우가 많아 피해 입증이 어렵다. 또한 피해자가 아동이다 보니 피해 진술이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문제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아동의 최우선 이익이 고려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인이 사건만 보더라도 입양을 담당했던 기관, 신고를 받은 경찰관, 아동보호전문기관 모두 아동의 최우선 이익이 고려되지 않았다. 의심 없이 양부모의 말만을 믿어주었다. 심지어 위로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동의 최우선 이익이 고려되기 위해서는 ‘설마 그랬을 리가’, ‘좋은 사람이었다’와 같은 편견 을 버리고 철저하게 의심해 보고 모니터를 해야 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해 보호할 경우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현행법(아동복지법 제4조)이다. 아동학대로 인해 아동이 분리된 후 부모가 원하거나 아동이 원할 때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는 법의 문제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해 인천에서 부모 학대로 사망한 다섯 살 아동의 경우도 위탁시설에 있다가 부모의 요청으로 원 가정으로 돌아간 후 한 달 만에 사망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같은 경우라 하겠다. 많은 아동은 아이러니하게도 때리는 부모일지언정 끊임없는 애착을 갈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모가 자신을 학대한다는 것을 쉽게 말하지 못한다.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 ‘미스 백’을 보면 “아니, 대한민국에 연간 몇만 명의 아동학대 피해자가 있는데, 정작 학대 부모로부터 아동을 분리해도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게 말이 돼?”라며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내용처럼 아동을 분리할 곳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동을 분리하는 법을 만들어낸다면 이것 또한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이 세상 어떤 부모도 본인의 자녀를 함부로 때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은 없다. [사진 unsplash]

이 세상 어떤 부모도 본인의 자녀를 함부로 때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은 없다. [사진 unsplash]

현 정부는 2019년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내세우면서 아동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고 공언했다. 민간에서 담당하던 아동학대 조사 영역을 공공의 역할로 전환하고, 민간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학대 피해 아동의 전문적 사례 관리를 수행하겠다는 좋은 취지였다. 그런데 그것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몇몇 지자체에서 담당 공무원들을 교육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의 경우 한 자치구에 아동학대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대부분 두세 명뿐이다.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아동 인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에는 역부족해 보인다. 안전평가, 서비스 계획, 서비스 제공, 다시 점검, 사례 종결, 사후 관리까지 매뉴얼이 꼼꼼하게 만들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와 더불어 생각하고 싶은 건 내가 만난 많은 아동학대 상담원의 업무과다 문제다. 상담사 한 명이 관리하는 학대 아동이 60~80명(미국의 경우 평균 20명 정도)이나 돼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업무량에 업무 중 폭언 등으로 이직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고, 전문성을 기대하는 것도 힘들다.

그 밖에도 민간 입양기관이 주도하는 입양의 문제점,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관의 역량 강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짚고 가야겠지만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학대 행위자, 누구보다도 부모의 인식 전환이다.

한 작은 생명을 향해 무자비하게 폭력을 쓰는 아동학대 행위자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이를 때리는 것일까? 배우지 못해서, 심신이 미약해서, 정신적 문제로…. 물론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 자녀를 때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그 행위자는 집 밖에서는 함부로 다른 사람을 때리고 다니지 않는다. 부모로서 나는 자녀를 때릴 수 있는 힘과 자격이 있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가정폭력을 행사한다. 결국 가정의 가장 힘없는 약자를 향해 생명을 짓밟는 야비한 인권 유린이 행해지는 것이다. 이 세상 어떤 부모도 본인의 자녀를 함부로 때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혹독한 겨울 날씨보다 더 살벌한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정인이는 어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이제부터라도 내 주변에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학대 피해 아동을 만난다면 우리 정인이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여 보자.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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