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연극 초짜들이 만든 ‘갸우뚱 인형극’, 호평 쏟아져

중앙일보

입력 2020.12.21 07:00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42)

아침에 눈을 뜨면 뉴스를 통해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자 수 통계를 확인하는 게 모든 사람의 일상이 됐다. 나는 그 수치를 보면서 조금의 안도, 또는 한숨과 두려움을 갖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 수치가 예상과 상상의 범위를 뛰어넘어 우리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 와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는 거의 문을 닫아 2학기를 방학 아닌 방학으로 보내면서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학년의 새 친구를 만나게 되는 상황에 와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는 거의 문을 닫아 아이들은 2학기를 방학 아닌 방학으로 보냈다. 수많은 제약은 아이들을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했고, 그들의 정서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진 pxhere]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는 거의 문을 닫아 아이들은 2학기를 방학 아닌 방학으로 보냈다. 수많은 제약은 아이들을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했고, 그들의 정서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진 pxhere]

코로나19로 인한 불평등은 교육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부모의 실직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사회적 돌봄 감소, 더 늘어나는 가정폭력과 아동폭력, 생활고로 인한 가족 간의 유대관계 악화, 학교라는 사회적 자원의 붕괴로 인해 아동에게 들이닥친 돌봄의 공백, 학교에 간다 해도 철저히 지켜져야 하는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 규칙, 자유롭게 뛰어놀 수 없는 텅 빈 운동장과 놀이터…. 장시간 노출된 온라인에서의 혐오적 표현과 그 해악은 또 어떤가? 이런 수많은 제약이 아이로 하여금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정서를 더욱 피폐하게 한다.

강의 요청을 받고 매일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내 일터는 코로나19가 본격화하면서 강의가 대부분 중단됐고, 내 삶 또한 180도 바뀌었다. 간혹 만나는 아이들은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져 눈만 빼곡히 내밀고 초롱초롱 선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간혹 친구의 마스크를 벗기는 장난을 할 때면 곧바로 선생님의 엄한 제지가 들어간다. 어린이들이 어른이 만들어 놓은 코로나19 규제로 인해 받아야 하는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3월, 4월을 견디다 나는 이대로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가 계속 창궐해 가는 4월께 나와 몇몇 인권 선생님은 ‘아이들을 잠깐이라도 좀 웃게 해줄 수 있는 뭔가 색다른 것이 없을까?’ 하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논의 끝에 도달한 결론은 아이에게 잠깐이나마 기쁨을 주고, 그러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는 ‘인권 이야기’가 포함된 인형극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아이들에게 잠깐이나마 기쁨을 주고, 그러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인권 이야기’가 포함된 인형극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사진 손민원]

아이들에게 잠깐이나마 기쁨을 주고, 그러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인권 이야기’가 포함된 인형극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사진 손민원]

그러나 우리가 하려는 것이 작은 인형극이지만 인형을 제작해야 하는 것부터 대본을 써야 하는 것, 인형극 무대는 어떻게 꾸며야 하고 음향 효과는…. 모두가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인형극 공연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정적 지원이 필요해, 우리는 여러 가지 국가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다행히 몇 군데에서 작게나마 최소한의 경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일은 저질러 놨으니 우리의 목적에 맞게 재미있으면서 교육적인 인형극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도 인형이라는 것을 만져본 적도 없고, 어떻게 연극 극본을 써야 할지도 막막한 상황에 ‘인권 인형극’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아주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4~5월은 제안서를 쓰고, 6~7월은 머리를 맞대고 인형극 대본을 써나가면서 수정을 반복했다. 8~9월에는 인형을 만들고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인형극 연습에 들어갔다.

각자의 일로도 바쁜 일상이었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 우리는 거의 매일 연습했다. 바빠서 만나지 못하는 날엔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인형극 연습을 중단하지 않았다.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성이 없었다면 포기하고 싶었던 수많은 순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는 11월부터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갸우뚱 인형극’ 공연을 하고 있다. 첫 공연을 마친 후 한 유치원 선생님은 “어느 극단인데 이렇게 재미있는 인형극을 하시나요? 내년에도 꼭 또 와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 짧은 칭찬의 말은 그간의 힘들었던 기억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비록 프로 배우들의 연극 공연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좀 더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통했을 거라고 믿는다.

인형극을 보면서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었고, 인형극 속에서 선생님이 던진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생각의 깊이도 조금씩은 커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연극 무대의 막을 올린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보람된 일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는 데 우리 모두 감회에 젖어 가슴이 벅차 올랐다.

우리는 또 희망하며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 울타리 밖으로 외출조차 금지된 노인들에게 어떤 방식의 재미있는 인권 교육을 할 것인가를. 나뿐 아니라 모두가 힘들어진 이 대공황 상황,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를 수없이 되뇌인다. 그렇지만 이 상황을 손을 놓고 한탄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몸으로 깨닫고 있다. 이윤과 눈에 보이는 성과만으로 쌓아 놓은 화려한 성이 대재앙 앞에서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어떤 국가가 국민 각 개인의 안전하게 살 권리를 잘 지켜지도록 책무를 잘하는 있는지를, 단단한 복지 안전망이 왜 필요한지를.

약자에게 더 고통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잘못 세워진 불평등의 질서를 재정비하기 위해 기존의 질서에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인 듯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처지를 보듬고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며 코로나19 시대의 슬기로운 생활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태를 극복하고 났을 때, 우리는 이전보다 더 나아져 있어야 한다(When we recover, we must be better than we were before).” -유엔의 요청문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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