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첫경험’ 나이, 낮아지는 한국 vs 높아지는 유럽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40) 

“성적인 고민이 있으면 색종이에 써서 비행기를 접어 앞의 바구니를 향해 날려 주세요.”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에게 가끔 하는 성교육 활동 중 하나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자꾸 떠올라요. 저 중독 아닐까요? 걱정되고 내가 나쁜 사람 같아요.”
“보건 선생님께 자위는 정상적인 현상이라 하는데 저는 수업시간에도,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도 발기가 되는데 제가 병에 걸린 건 아닐까요.”

이런 현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 있는 것이지만 나름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왜 아이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양육자에겐 이런 고민을 말하지 못하는 걸까. 성 의식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부모로부터 자녀가 성교육을 받는 경우는 2.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네스코는 2009년부터 세계보건기구, 유엔여성기구 등과 함께 교육 현장에서 포괄적인 성교육 시행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 pixabay]

유네스코는 2009년부터 세계보건기구, 유엔여성기구 등과 함께 교육 현장에서 포괄적인 성교육 시행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 pixabay]

부모 세대는 자녀에게 ‘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얼마만큼, 언제 알려줘야 할지 모르고 그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럽고 껄끄럽게 여긴다. 그들도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육자는 ‘성교육’ 하면 생물학적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가 궁금해하는 ‘그것’(구체적인 성행위)을 민망스럽게 생각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 가정에서 ‘성’이라는 단어는 금기시된다. ‘성’은 부끄러운 것이고, 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죄악시한다. 그래서 성적인 행동은 자꾸 음지로 숨어버리고 만다.

최근 여성가족부에서 어린이가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나다움’을 배우고 찾아가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나다움 어린이 책’을 배포했다. 그러나 그 책 중 일부 몇 권에 대해 외설적이고 동성애 찬양을 조장한다는 이의가 제기돼 국민청원에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여가부는 급히 책을 회수하는 조처를 했다. 관련 기사의 댓글을 찾아보니 “미쳤군 미쳤어. 다른 나라에서 상 받는 거라고 다 좋은 거야.” “완전 19금 소설이구먼.” 기성세대가 10대의 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마이클 무어 감독, 2016년)에서 감독은 더 좋은 삶을 찾아 성조기를 들고 여러 나라의 일급비밀을 빼내기 위해 침공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받도록 하는 슬로베니아의 교육을, 과거를 반성하며 사람다운 삶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독일인의 삶을, 학교에서 경쟁이 아닌 행복을 배우는 핀란드 교육시스템을, 노동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즐기기 위해 노동하는 이탈리아 노동환경을, 프랑스에 가서는 호텔 수준의 학교 급식과 함께 솔직하고 가감 없이 담백한 ‘성교육’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다.

더 좋은 삶을 찾아 성조기를 들고 여러 나라의 일급비밀을 빼내기 위해 침공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사진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스틸]

더 좋은 삶을 찾아 성조기를 들고 여러 나라의 일급비밀을 빼내기 위해 침공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사진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스틸]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현실과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아 씁쓸함마저 느껴지지만 한편으론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실제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 이전까지는 ‘금욕’에 치우친 성교육이 실시됐고 10대의 임신율은 프랑스보다는 2배, 독일보다는 6배, 스위스보다는 7배 높게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어떨까? 한국의 부모는 내 자녀가 성에 대해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최대한 늦게까지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10대 청소년(성 경험이 있는 청소년 대상)이 성을 처음 접한 나이가 13.6세로 조사됐다.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1학년의 나이다. 그리고 그들이 피임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놀랍게도 58.7%만이 피임을 했다는 것이다. “왜 피임을 안 했는가?”에 대한 답변은 “피임법을 잘 몰라서”, “질외사정을 하면 된다고 해서”, “귀찮아서”라고 답을 했다. 한국에선 첫 성 경험 나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지만, 단계적으로 사실적인 성교육 방식을 취하고 있는 유럽의 10대 첫 성관계 연령은 점점 늦어지고 있으며 성인 지력은 더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면 안 될 듯하다.

우리 아이가 접하고 있는 세상은 어떤가? 아이가 ‘성’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그것을 충족하게 하는 자극적이고 왜곡된 영상물은 클릭 몇 번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럼 그 매체 안에서 가르쳐 주는 성은 아이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것인가? 부모들이 그토록 방어하고자 하는 ‘사악한 성’을 언제까지 방어할 수 있을 것인가? 너무 많은 자극이 사방에서 끊임없이 아이를 공격한다. 그것을 통해 아이는 올바른 성인지 관점을 가질 수 있을까?

성은 누구나가 가진 각자의 정체성이 있고, 성적 주체로서의 성적인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기에 성교육은 성에 대한 수치심을 심어 주는 교육이 돼서는 안 된다. 기존에 성교육이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성만을 다뤘다면 인권과 성 평등의 개념을 포괄하는 성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성은 나 자신에게 안전한 것이어야 하며 또한 상대에게도 안전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교육’의 목표는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인 권리와 존중을 배우는 것이 돼야 한다.

자녀가 자위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좋아하는 남학생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을 청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양육자가 되길 바란다. [사진 pixabay]

자녀가 자위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좋아하는 남학생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을 청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양육자가 되길 바란다. [사진 pixabay]

유네스코도 2009년부터 세계보건기구, 유엔여성기구 등과 함께 교육 현장에서 포괄적인 성교육 시행을 요청하고 있다. ‘성교육’이라는 것은 단지 난자와 정자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만나는지, 남자·여자의 신체 구조를 넘어 서로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성적 관계 맺기,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성적 행동에 대한 책임 등을 포괄적으로 교육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녀가 자위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좋아하는 남학생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을 청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양육자가 되길 바란다. 자녀가 동생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궁금해할 때 ‘나다움 어린이 책’ 중 문제가 됐던 『아이가 어떻게 태어날까』는 안성맞춤인 교육 자료다. 이때 고민해야 할 것은 이 책을 보면서 엄마·아빠가 서로 얼마나 사랑했는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어떤 감정이 나타나고 그 감정을 아빠와 엄마는 서로에게 어떻게 전달했는지, 이런 행위로 소중한 너와 동생이 태어났으며, 그래서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 등을 어떻게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가이다. 가정은 가장 좋은 ‘성교육’의 장이고, 부모는 가장 효율적으로 성교육하는 교사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