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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세 딸 중 둘째에게 유독 화내는 이유 알고보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38)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Love You Forever, 로버트 먼치)』의 그림책에는 이 말이 계속 반복된다. 아이가 태어나고 점. 점. 점…. 성장할 때 엄마는 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렇게 아이는 ‘너를 사랑해’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라고, 어른이 되고, 엄마 곁을 떠나고, 엄마는 더 이상 기력이 없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없어진다.

이 책을 넘기다 보면 지금은 성장한 내 아이의 어릴 적 한순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내가 어떤 사랑을 주었는지 아련한 기억들이 소환된다.

아이를 건강하게 잘 성장시키는 것은 고단하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다. 아이의 삶이 시작되는 최초의 순간부터 부모의 선택 하나하나는 그의 미래를 만드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과거 부모로부터 교육받은 대로 답습하는 부모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양육자로서 더 나은 가치를 찾아 노력하면서 사랑을 몸소 실천하려는 부모의 모습은 참으로 존경받을 만하며 칭찬하고 싶다.

아이는 ‘너를 사랑해’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라고, 어른이 되고, 엄마 곁을 떠나고, 엄마는 더 이상 기력이 없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없어진다. [사진 pixabay]

아이는 ‘너를 사랑해’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라고, 어른이 되고, 엄마 곁을 떠나고, 엄마는 더 이상 기력이 없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없어진다. [사진 pixabay]

내가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양육자나 교사의 마음은 대부분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좋은 것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 사랑을 어떻게 올바르게 전달할까 생각하다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보고 인터넷도 찾아보며 강연도 듣는다. 양육자와 자녀의 갈등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제의 시발점이 되는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하게 된다.

다른 집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데, 애가 커서 이렇게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사람 노릇이나 제대로 할지 부모는 늘 불안하다.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이라 생각한 만큼이라도 좀 해주길 기대하지만 아이는 양육자의 기대에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 그 안에 엄청난 갈등이 생기고 저항이 싹튼다. 양육자는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하느라 아이의 마음에 둔감해진다. 자녀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그들 사이에 되돌릴 수 없는 마음의 장벽이 쌓여 간다. 여전히 부모의 마음은 “나는 너를 사랑해!”를 외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슬픈 현실이다.

“우리 애는 현재 중2 남자아이예요. 초등학교까지는 아빠와 축구도 하고 잘 지내는 편이었죠.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빠와 자주 다투기 시작했어요. 아이는 아빠의 퇴근 시간을 체크하고, 어쩌다 일찍 들어오는 날엔 아빠를 피해 독서실로 갑니다. 아이는 왜 이런 집에 태어났는지…라면서 점점 의기소침해집니다.”

“전 세 명의 딸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자꾸 둘째 딸에게만 유독 화를 냅니다. 때론 참았던 화를 쏟아붓곤 하지요.”

많은 양육자가 자녀와의 문제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이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현재 자녀와의 관계에 전이돼 걸림돌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위 첫째 사례의 경우, 아버지가 삼수까지 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아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갈등인 것 같다는 게 엄마의 진단이다.

두 번째 사례는 평상시엔 괜찮다가도 화가 통제되지 않을 때 둘째 딸에게만 유독 더 모욕을 주면서 화를 내는 이유를 알아보니 둘째 딸의 외모나 성격이 자신을 너무나 미워하고 힘들게 했던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꼭 빼닮았다는 것이다. 이 부모는 자신의 느낌, 분노,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 자녀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양육자에게 질문한다. “자녀를 믿고 지지하나요?” “물론이죠. 항상 잘되기를 바라지요(비록 지금 행동은 지지하는 모습이 아닐 수 있지만…).” 그럼 “부모로서 당신 스스로를 믿고 지지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녀와 나의 분리가 돼 있지 않은 것이다. 과잉보호 혹은 과잉통제를 하기도 한다. 또는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도 못할 극악무도한 학대 부모의 모습을 종종 접하기도 한다.

자녀가 한 사람의 존중받는 인격체임을 인정해 주고, 존중하는 태도로 아이의 성장을 지지하고자 한다면 나 또한 누구누구의 양육자만이 아니라 ○○○이란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존중하고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불안에 떠는 부모, 과거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부모, 자신을 돌보지 않는 부모 등 대부분의 부모는 어느 정도 불완전하다. 그래서 부모도 쉼 없는 학습이 필요하다. [사진 openclipart]

불안에 떠는 부모, 과거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부모, 자신을 돌보지 않는 부모 등 대부분의 부모는 어느 정도 불완전하다. 그래서 부모도 쉼 없는 학습이 필요하다. [사진 openclipart]

내가 만난 많은 양육자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 자신만을 위해 돈을 쓰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고,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많았다. 그런데 양육자인 당신 자신도 아주 소중한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자.

자신을 위해 웃고 기쁨을 주는 것을 하는 것, 내 건강을 지켜내기 위해 뭔가를 하는 것(내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가능한 범위의 사치) 중 매일 한 가지씩을 실천해 보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이다. 이 또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아이는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하고, 훗날 그들의 자녀에게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양육자가 될 것이다.

불안에 떠는 부모, 과거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부모, 자신을 돌보지 않는 부모 등 대부분의 부모는 어느 정도 불완전하다. 그래서 부모도 쉼 없는 학습이 필요하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거저 되는 게 아니다.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 스스로를 아끼고 더 나은 양육자가 되기 위해 뭔가를 공부하는 것이 건강한 시민 역량을 갖추는 것이며, 나아가 자신이 성장하면서 길들여진 양육 방식에서 벗어나 존중하는 방식의 양육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배우는 장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가정이란 울타리는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곳이기도 하고 가장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정이란 이 작은 사회가 더 안전하고 행복하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아동이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가도 힘을 보태야 한다. 백년대계의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하는 것인 만큼 어떤 정책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국가 차원의 의무적 부모교육은 이룰 수 없는 희망사항인가?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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