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헉, 이 사람 누구?”나이듦 깨우쳐준 화장실 거울

중앙일보

입력 2021.02.15 07:00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44)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내 나이도 이제 꺾어진 100살을 훌쩍 넘겼다. 조선 시대 왕의 평균수명이 46세라고 하니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나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옛날엔 떡국을 많이 먹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엄마에게 두 그릇을 달라고 졸라대던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되면 핑크빛 인생이 마치 동화처럼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나 보다.

반세기를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20대 나의 하루나 30대·40대 때에 동화 같은 날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많이 참아야 했고, 두려움에 맞서야 했으며, 갈등이 있었고…. 오직 찰나의 행복만이 생각날 뿐이다. 그리고 50대인 지금도 나의 삶은 갈등의 연속이고 두렵고 힘겹기도 하다.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부터인가 한 해가 지나면 나도 모르게 “또 한 살 먹는구나” 하고 한숨 섞인 말이 나오곤 한다. 내 나이가 몇인지 순간순간 숫자에 대한 현실감의 오류도 발생한다.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때는 내추럴하게 온종일 집에 있는 날 문득 화장실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다. “헉, 이 사람이 누구였던가?” 자신도 많이 낯선 모습, 그것이 나다.

내 인생의 10대·20대엔 무엇이든 배우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느라 전력 질주했고, 30대·40대엔 일과 가정을 위한 시간으로 채웠다면 남은 시대의 인생 2막을 위해서는 어떤 주사위를 던져야 할 것인가? [사진 pxhere]

내 인생의 10대·20대엔 무엇이든 배우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느라 전력 질주했고, 30대·40대엔 일과 가정을 위한 시간으로 채웠다면 남은 시대의 인생 2막을 위해서는 어떤 주사위를 던져야 할 것인가? [사진 pxhere]

한 동료 친구가 초등학교에 성 평등 강의가 있어 한 학교를 방문했다. 낯선 학교에서 담당교사인 보건 선생님을 찾아가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초등 1, 2학년 정도의 아이가 눈에 띄어 “보건실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라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보건실 저쪽이에요” 하면서 쫄랑쫄랑 그쪽으로 뛰어가 문을 열고 “선생님, 어떤 할머니가 보건실 찾아요”라고 보건 선생님께 말했다고 한다. “아! 이제 아이들 눈에는 내가 할머니로 보이는구나!” 그때 비로소 자신의 나이 듦에 대한 자각이 현실로 다가왔고, 그 충격 이후 학생들을 만나 교육하는 것이 꺼려진다는 심정을 토로하며 웃으면서 서로 이야기했다. 친구의 경험은 내 씁쓸함이기도 했다.

내 인생의 10대·20대 때엔 무엇이든 배우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느라 전력 질주했고, 30대·40대 때엔 일과 가정을 위한 시간으로 채웠다면 남은 시대의 인생 2막을 위해서는 어떤 주사위를 던져야 할 것인가? 어떤 배경에 나를 가져다 놓을 때가 가장 나답게 살 것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도 의도치 않은 일상의 ‘잠시 멈춤’은 계속된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니 그간 소홀히 보았던 집안 곳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시간을 내어 옷장 속의 옷을 정리하고, 부엌살림도 끄집어내 정리했다. ‘더는 홈쇼핑에 현혹되지 말아야지’ 하고 과도한 소비에 대해 반성도 해 본다. 앨범과 함께 아이들 일기장, 상장, 책장도 정리했다. 여행지의 추억이 깃든 물건을 꺼내 그 시간의 기억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한동안 빠졌던  퀼트 천과 자수 실을 다 찾아내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앉아 바느질도 하고, TV와 영화도 본다. 조용하고 느리게 사는 요즘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연일 팬데믹 이후의 세상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점치고 있는 상황. 나 또한 팬데믹 이후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를 상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든 어르신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지만 이제 이 나이가 돼 보니 결과의 승리에 집착하는 것보다 과정을 즐기는 여유가 생겼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또 세상에 대해서도 보다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된 듯하다. 강의하면서도 앞에 나서서 빛나는 사람보다는 뒤처진 사람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잘 지내니’라는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고 정말 진심으로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인사를 할 수 있는 여유 또한 생긴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나이 또한 나쁘지만은 않다.

대다수의 사람은 늙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내 10대·20대를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잘못된 ‘나이 주의’에 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 나이에 뭐 저렇게까지’, ‘저 나이에도 감정이 있을까’, ‘그냥 가만히 있지 주책없네’…. 인생의 모든 것이 끝났으니 발전할 일도 없고, 텃밭이나 가꾸고 산책을 하면서 조용히 살아야 하는 파장의 시간에 서 있는 사람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나이가 돼 보니 얼마나 이 사회가 나이에 관련된 낡은 패러다임으로 노년의 삶을 위축시키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웃에 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공무원으로 정년퇴임을 하고, 부인은 평생 가정과 아이들을 잘 보살펴 온 가정주부였다. 두 분은 너무나 상반된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데, 남편은 퇴임 후 지역의 작은 봉사활동이나 종교시설 활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늘 웃었다. 반면에 당시 나이가 60세 정도인 아주머니는 늘 ‘죽을 것같이 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몸이 많이 불편한가 보다 생각했지만, 아들·며느리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만날 때마다 ‘몸이 아파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하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만 살았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엄마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는 것이 완벽한 삶이고 스스로 큰 자랑이었다. 이 부부는 어떤 삶의 방식으로 나이 듦을 대처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이듦을 통과하는 길은 여러 갈래고 그 안의 과정이 착륙인지, 이륙인지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 2막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사진 pxhere]

나이듦을 통과하는 길은 여러 갈래고 그 안의 과정이 착륙인지, 이륙인지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 2막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사진 pxhere]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천편일률적인 상업적 이미지는 젊다는 것을 모든 가치의 최우선으로 우상화시킨다. 그리고 사회통념은 노인은 병들거나 아파서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단순해야 하며, 쓸쓸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이런 편견이 ‘혐노(嫌老)현상’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나는 이제 늙었어!’라고 자신을 판단하고 규정하며 ‘남은 삶을 그저 빈둥거리며 TV나 보면서 살면 되지’라며 부적절하고 제한된 나이 역할에 사로잡혀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간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자신을 가꾸는 동시에 타인과의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찾는다.

나이 듦을 통과하는 길은 여러 갈래고 그 안의 과정이 착륙인지, 이륙인지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 2막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늘어난 수명에 대한 의미를 성찰할 때 새로운 모습의 인생 후반기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자연스러운 삶의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오늘 하루하루를 즐겁고 보람 있게 꾸밀 수 있다면 100세 시대를 후회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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