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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인권 사각지대’ 프리랜서 강사로 살아가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46)

나는 프리랜서 강사다. 프리랜서 강사는 ‘말하는 시간과 계약이 비교적 자유로운 유연한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프리랜서 강사는 대부분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강의를 건별로 계약하고, 강의 시간에 따라 그에 따른 강사료를 받는다. 나와 가까운 친구 중에 ‘일하고 싶을 때는 일하고 쉬고 싶을 때는 쉬며, 돈도 벌고 강의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고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 친구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4대 보험·수당·복지와는 거리가 너무 먼,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명칭으로조차도 분류되지 않는, 타인의 선택에 의해서만 내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늘 불안감을 갖고 살아가는 프리랜서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들은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기 위한 재투자의 끈을 놓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일기를 보면서 과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언제·어디서·어떤 강의가 있었고,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내용을 나누었는지 내 다이어리를 보면 대부분 알 수 있다. 깨알 같은 글씨를 채곡채곡 채워 나간 그 다이어리를 보고 있으면 강사로서 내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했으며, 한 강의 한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밤을 불태우며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눈에 보인다. 매년의 일상이 채워져 쌓인 그 다이어리는 나의 성장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겪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이 내 삶도 지배해 버렸다. 지난해의 다이어리엔 강의 의뢰에 대한 정보 위쪽에 빨강 글씨로 ‘취소’ ‘취소’ ‘취소’라는 단어로 도배됐다. [사진 pixabay]

모두가 겪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이 내 삶도 지배해 버렸다. 지난해의 다이어리엔 강의 의뢰에 대한 정보 위쪽에 빨강 글씨로 ‘취소’ ‘취소’ ‘취소’라는 단어로 도배됐다. [사진 pixabay]

그런데 지난해의 다이어리를 보면 참 어처구니없다. 모두가 겪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이 내 삶도 지배해 버렸다. 지난해의 다이어리엔 강의 의뢰에 대한 정보 위쪽에 빨강 글씨로 ‘취소’ ‘취소’ ‘취소’라는 단어로 도배됐다. 그리고 나의 통장은 점점 0원에 가깝게 비어 가기 시작했다. 이제 강사로서 나의 삶은 마감인가, 수많은 고민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온라인 화상 강의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것이 대세가 됐고, 강의 10건 중 8~9건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화상 강연이나 수업을 위한 플랫폼 도구는 너무도 다양하다. 각 강의 요청 기관은 자신 입맛에 맞는 온라인 도구를 선택하고, 강사는 원활한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그 도구를 수월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강의를 잘 준비한다는 것은 강의 내용은 물론이고 더불어 화상수업 도구 사용 또한 능숙하게 해야 하는 것을 포함한다.

엊그제의 일이다. 오전 강의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첫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밥솥을 열었다. 밥통은 텅 비어 있었고, 냉장고에서 겨우 누룽지 한 덩어리를 발견해 그걸 냄비에 끓였다. 잘 익은 나박김치와 함께 한 수저 뜨려는 순간, 친한 동료 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어디세요?”
“집.”
“그럼 빨리 이 주소로 들어가 주세요. 빨리빨리요.”

목소리에서 얼마나 다급한 순간인지를 눈치채고 곧바로 방으로 달려가 노트북 두 대를 동시에 틀었다. 강의 자료를 빨리 열고 카톡으로 날아온 주소를 두 컴퓨터에 연결한 후 소리와 화면을 체크했다. 한쪽 컴퓨터는 강의 자료를 공유하고, 한쪽에서는 강의를 듣는 분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놔야 한다. 이렇게 부리나케 접속해 강의장까지 들어가 수십 개의 증명사진 같은 화면 안의 사람들과 눈인사를 한다. 다행히 대체로 강의는 이뤄졌지만 교육받는 분들은 무려 40분 전부터 강사를 기다려 온 것이고, 강사는 그날 준비한 강의가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대체된 수업이나 강의는 ‘펑크’가 날 때 금방 다른 강사로 대체할 수 있는 편리성도 있지만 여러 변수가 많다. 지금까지도 왜 접속되지 않았는지 미스터리라고 한다. 온라인 화상 강의나 수업은 강의하는 사람의 온라인 환경과 강의를 듣는 사람의 인원수 및 그들 각자의 환경에 따라 많은 변수가 나타나고, 사생활이나 개인정보 노출 위험도 크기 때문에 더 많은 긴장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과 강연은 더 철저히 준비하고 점검해야 한다. 온라인 화상 강연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강의 담당자다. 강사가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채팅창에 관련 자료나 공지사항, 질문에 대한 답글을 올려줘 강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손민원 강사님이시죠? 저는 기관의 라고 합니다. 온라인 강의가 가능하시다고 하시는데 몇 월 며칠에 강의해 주실 수 있나요?” 장황한 소개와 취지, 대상과 인원에 대한 설명과 교육 내용까지 요청하는 데 10분 정도가 소요됐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강사료는 어떻게 책정돼 있나요?”(왜 아직도 돈 얘기를 하는 것이 참으로 힘든지 말꼬리를 내리며 살짝 물어본다). “어머, 무료 아니에요? 저는 선생님이 인권교육을 무료로 하실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어요.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저희가 책정된 예산이 없어서….” 나도 분명 생계형 노동자인데 왜 내 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일까? 분명 24명의 청소년을 이미 세팅해 놓은 상황에서 10분간의 설명에 대해 매몰차게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주변엔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가 존재한다. 노동 형태의 모호성으로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되는 이들을 위한 보호지원 체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사진 pixabay]

우리 주변엔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가 존재한다. 노동 형태의 모호성으로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되는 이들을 위한 보호지원 체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사진 pixabay]

강의 시작 시간이 오후 3시였고, 강의 전 30분 도착이라는 준비시간까지 계산해 오후 1시에 집에서 출발하고 지하철을 탄 상황이었다.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으니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의 선생님이다. “너무 죄송합니다. 담당자가 바뀌면서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연수가 여러 개 있어서 다른 연수 때문에 강사님의 강의를 못 듣게 됐어요.” 부글부글, 화가 나도 이 선생님에게 화풀이해야 아무 의미가 없다. 한 강의를 잘 수행하기 위해 준비한 노력에 대한 보상, 그날 강의를 위해 다른 강의까지 포기하며 비워 놓은 소중한 시간에 대한 손실을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고 평범한 프리랜서 강사라면 겪는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도착하기 전에 연락을 받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가?(도착해서 이런 소식을 들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동료 강사는 감기 기운으로 목소리가 자꾸 다운되니 “어제 좀 무리하셨나 봐요”라는 성희롱 발언을 듣기도 했다. 너무 속상해 눈물이 났지만 거래 관계에서 철저히 약자인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거의 없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서 보호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강사는 무방비로 노출돼 있고,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창구도 없다. 지난해 경기도 프리랜서 실태조사를 보면 일방적 계약 해지, 체불, 불공정 거래나 부당행위는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대응은 98%가 개인적으로 해결하거나 참았다는 응답이었다.

우리 주변엔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가 존재한다. 노동 형태의 모호성으로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되는 이들을 위한 보호지원 체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내가 경험한 부당한 대우, 인권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 마련과 피해자 지원, 그리고 근본적으로 프리랜서 또한 존엄한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급하고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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