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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모를걸"…'허리수술' 엄마는 중증장애 딸 걱정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엄마 김신애(왼쪽)씨와 딸 김유진씨. 사진 김신애씨 제공

최근 엄마 김신애(왼쪽)씨와 딸 김유진씨. 사진 김신애씨 제공

“아마 우리 딸이 죽어도 모를 것 같아요”

‘죽음’이란 단어를 꺼내면서도 엄마는 덤덤했다. 그는 사회가 딸을 외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상을 덮친 지 1년. 첫째 딸의 동선은 대부분 집 안에 머물러 있다. 첫째 딸 김유진(24)씨는 뇌 병변·지적 장애에 뇌전증이라는 기저질환이 있는 중증 중복장애인이다.

스무살이 훌쩍 넘었지만 홀로 식사를 할 수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지자체에선 딸이 어떻게 사는지 방문은커녕 전화 한 통도 없다는 게 엄마 김신애(51)씨의 말이다.

코로나가 앗아간 엄마와 딸의 일상

지난해 장애인 종합 복지관이 휴업에 들어가면서 유진씨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진 김신애씨 제공

지난해 장애인 종합 복지관이 휴업에 들어가면서 유진씨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진 김신애씨 제공

코로나19가 일상을 침범하기 전, 경북 울진에 사는 유진씨는 매주 화요일 엄마와 함께 읍내 시장을 찾았다.

매주 목요일은 동네 도서관에 방문했다. 남은 시간엔 장애인 복지관을 찾아 하루에 2시간씩 물리·언어치료를 받았다. 직장인 남편(54)과 대학생 둘째 딸(20)을 제외하면 첫째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건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딸을 돌보며 틈틈이 장애인 관련 강연을 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경북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엄마와 딸의 일상엔 변화가 생겼다.

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유진씨는 집에만 있게 됐다.

위루관(복부에 구멍을 뚫어 위와 직접 연결하는 관)으로 영양을 공급해야 하는 중증환자인 유진씨를 돌보기 위해 엄마의 일상도 멈췄다.

강연은 물론 외출도 포기해야 했다. 유진씨처럼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각 지자체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융합 돌봄센터를 만들어 낮 시간대 1대1 수준으로 돌봄 인력을 제공하기로 한 광주광역시가 대표적이다. 유진씨 가족도 상황이 나아질 거란 기대를 품었다.

농어촌은 여전한 돌봄 사각지대

유진씨의 일상. 그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 김신애씨 제공

유진씨의 일상. 그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 김신애씨 제공

그러나 돌봄 지원은 도시만의 이야기였다. 인구가 적고 노년 인구가 대부분인 농어촌 지역은 달랐다. 돌봄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다.

간신히 돌봄 인력을 구하더라도 연령대가 높아 장기간 돌봄이 힘들었다.

울진군도 그중 하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진씨를 비롯한 중증 장애인들은 사회와 만나는 접촉점이 좁아지고 신체·인지기능이 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더 외로워진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김씨는 병원에서 목디스크 진단까지 받았다.

키가 155㎝인 다 큰 딸을 직접 들어 옮기면서 시작된 근육통이 악화한 탓이다. 이미 두 차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는 등 관절 질환을 달고 사는 그에겐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그래도 엄마는 본인보다 딸 걱정이 앞선다. 점점 무기력해지는 딸만 보면 엄마는 가슴이 저민다.

“중증 장애인도 낮에 다양한 활동을 하고 교육을 받을 기회가 필요해요. 정부와 지자체가 농어촌의 한계를 생각해서 지원책을 꼭 마련해줬으면 좋겠어요.”

수년 전 유진씨가 복지관에서 만들어 온 카네이션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엄마의 간곡한 어버이날 바람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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