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헌혈이 단체 앞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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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길거리에서 헌혈을 권하는 아주머니 때문에 마지못해 헌혈을 했죠. 그런데 한 번 해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어요. 그러고는 스스로 헌혈의 집을 찾게 됐죠."

2004년 10월 처음으로 헌혈을 한 주연미(36.경기도 고양시)씨는 지난달 벌써 세 번째 헌혈을 했다. 주씨는 "건강한 사람에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지만 환자들에겐 생명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헌혈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17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1분기 개인 헌혈자 수가 단체 헌혈자 수를 추월했다. 적십자사가 헌혈 사업을 시작한 지 3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분기 헌혈자는 56만여 명이며 이 가운데 개별 헌혈자가 30만여 명(53.6%)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늘었다. 50명 이상이 한꺼번에 헌혈하는 단체 헌혈은 26만 명에 못 미쳤다. 개인 헌혈 증가에는 여성이 한몫 톡톡히 했다. 1분기 여성 헌혈자는 11만여 명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28.9% 늘어나 남성 헌혈자 증가율(6.7%)을 웃돌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역과 연세대 앞, 광주 충장로 등에 대형 헌혈의 집을 만든 것도 효과가 있었다. 몰라서 못했거나 방법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첫 경험의 기회를 준 것이다. 연세대 앞 헌혈의 집은 하루 평균 60~100명이 헌혈을 한다.

개별 헌혈이 늘면서 혈액 공급에도 숨통이 트였다. 방학으로 단체 헌혈이 주는 여름.겨울에 공급이 달리던 현상이 크게 완화됐다. 또 단체 헌혈은 시간 제약 때문에 피를 그대로 뽑지만 개인 헌혈은 헌혈자가 동의하면 1인당 40분 정도 걸리는 성분 헌혈을 할 수 있다. 백혈병 환자 등에 필요한 혈소판이나 혈장의 확보가 쉬워진 것이다.

그래도 혈액은 아직 부족하다. B형을 제외한 혈액은 재고가 적정량(7일치)에 못 미친다. 전체 헌혈자 수도 2004년부터 2년 연속 감소했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2009년까지 도심지 헌혈의 집을 100개로 늘리고 주말이나 평일 밤 시간에 문을 여는 곳을 늘려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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