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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수입 40만원인데 연대보증인? 전 재산 잃은 ‘87세 문맹 할머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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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전북 전주에 사는 A씨(87·여)는 전 재산을 잃고 빈털터리 신세가 됐다. 14년 전 아들과 며느리가 금융권에서 수천만원의 대출을 받을 때 연대보증을 선 게 화근이었다. 뒤늦게 이를 안 A씨 딸들이 부실·부당 대출을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해당 금융기관 측은 “합법적인 대출이었다”고 맞서고 있다.

아들·며느리 채무 안갚아 경매 집행 #신협 “충분히 설명, 합법적인 대출”

A씨 둘째 딸은 27일 “문맹(文盲)인 어머니는 대출 당시 고령에다 교통사고 직후여서 연대보증의 의미도 정확히 모른 채 신협 직원과 자식에게 속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머니는 이후 뇌경색이 와 현재 반신마비 상태의 장애인”이라며 “최근 신협중앙회와 금융감독원 측에 잇달아 민원을 제기했고, 당시 대출 담당 직원의 징계를 요구한 상황”이라고 했다.

전주 모 신협 등에 따르면 A씨는 2007년 9월 A씨 셋째 아들과 둘째 며느리가 해당 신협에서 각각 3000만원과 2600만원을 대출받을 당시 연대보증을 섰다. 신협 직원은 A씨 둘째 아들 집을 방문해 대출 계약을 진행했다. A씨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둘째 아들 집에 머물고 있었다. 한글을 못 읽는 A씨 대신 둘째 아들이 연대보증 서류 내용을 대필하고 날인했다.

신협 측은 A씨의 셋째 아들과 둘째 며느리가 채무와 연체 이자(연 20.8%) 등 총 6800만원을 갚지 않자 2008년부터 수차례 소송을 통해 A씨의 예금과 집·토지 등 약 5600만원 상당의 재산을 가압류한 뒤 경매를 거쳐 강제 집행했다. A씨 둘째 딸은 “소작농이던 어머니는 월수입 40만원도 안 되는 저소득층으로서 애초 5600만원의 대출 보증을 설 능력이 안 됐다”며 “신협 직원과 둘째 아들이 서로 짜고 부실 대출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를 속이고 연대보증인으로 끌어들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A씨가 상환 능력이 되지 않는데 연대보증인으로 세운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이미 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금감원이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게 A씨 측 설명이다.

해당 신협 측은 “대출 과정에 하자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당시 대출을 담당한 신협 관계자는 “당시 A씨를 직접 찾아가 약정 내용과 함께 연대보증인으로서 책임 등을 충분히 설명한 뒤 대출을 진행했다”며 “채무자들이 약정 기한에 채무와 이자를 갚지 않아 부득이 A씨 재산을 압류했고, 이후에도 상환하지 않아 강제 집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신협중앙회 측은 민원에 대해 조사 중이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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