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건 되면 두산 경영 참여 … 밖에서 병원 도울 것"

중앙일보

입력

서울대 의대 박용현(63) 교수가 정년을 3년 앞두고 명예퇴직한다.

전 서울대병원장이자 외과 의사인 박 교수는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박두병 초대 회장의 4남. 따라서 그의 명퇴에 재계와 의료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형제의 난'으로 총수 일가가 불구속 기소되면서 위기에 빠진 두산그룹의 새 '선장' 후보로 거명되고 있어서다. 의료계에선 두산그룹이 박 교수를 앞세워 병원 진출을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박 교수는 퇴임에 앞서 서울대 의대 동기생들에게 보낸 '28년 9개월 만의 외출'이란 제목의 e-메일에서 "병원 보직 11년간 병원 행정에만 정열을 쏟다 보니 교수 본연의 임무인 교육.연구.진료는 소홀히 할 수 밖에 없었고, 이제는 병원에 더 이상 근무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유는 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선은 두산그룹이 지원하는 학술재단인 연강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장학.학술지원사업을 하고 여건이 되면 두산그룹의 일도 조금은 할 것 같다"고 여운을 남겼다. 박 교수는 지난해 11월 연강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박 교수는 최근 박용곤 명예회장과 함께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두산 인프라코어 인천공장을 찾았다. 박 교수가 명예회장과 그룹 계열사 현장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서울대병원장으로 있으면서 직원 5500여 명, 연간 예산 5000억원에 이르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면서 경영수업을 한 것과 계열사 방문을 경영 참여를 위한 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 물었다.

그는 "두산그룹은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로 움직이면서 3년 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로 했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듯 그룹 회장으로 가는 일은 절대 없겠지만 여건이 된다면 경영참여를 마다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이 비상경영위원회를 구성해 지배구조를 쇄신하고 있는데 병원장 출신 대주주가 그룹 회장이 될 경우 주주나 국민에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병원장 재직 중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권위적.관료적이었던 병원의 이미지를 친절한 병원으로 탈바꿈시킨 점을 꼽았다. 병원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하고, 분당 서울대병원과 서울 강남 건강검진센터 문을 연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바깥에 나가면 더 자유롭게 서울대병원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의료계에 40년간 몸담았던 의료인으로서 모른 체하지는 않을 것"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3년 서울대 의학과 외과학교실 부교수를 거쳐 기획조정실장.진료부원장, 11대.12대 병원장 등 서울대병원에서 11년 동안 주요 보직을 맡아 병원 살림을 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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