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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키트 인터넷에 풀어놓고…"요양병원서만 쓰라"는 당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건당국이 스스로 콧속에서 검체를 채취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가검사키트를 조건부 허가한 걸 두고 혼란이 일고 있다. 당장 내달부터 약국, 인터넷 등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게 됐지만 정작 당국은 “보조적 수단”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제한된 목적으로만 쓸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비용 부담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이상원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분석단장. 연합뉴스

이상원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분석단장. 연합뉴스

23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유천권 진단분석관리단장은 브리핑에서 “이번에 조건부 허가된 제품은 사용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성능이 낮다는 단점도 있다”며 “보조적 수단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일단 허가는 내줬지만, 방역정책 주무부처인 질병청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하라고 강조한 것이다.

물량 부족 관련한 질문이 나왔을 때도 이상원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생산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물량 걱정은 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제한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하게 용도에 맞게끔만 사용한다면 과다한 물량은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남용을 경계한 발언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상원 단장은 “증상이 있는 분들은 표준검사법인 PCR(유전자증폭) 검사법으로 검사받기를 우선 권장한다”며 “민감도가 낮기 때문에 자가검사에 의존하기보다 먼저 PCR 검사를 받는 게 올바른 선택”이라고도 재차 강조했다. 민감도는 양성인 사람을 양성으로 판정하는 걸 말한다. 가짜 양성이 많이 나오면 민감도가 낮다고 본다.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에스디바이오센서 관계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 진단키트'를 이용해 검사를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에스디바이오센서 관계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 진단키트'를 이용해 검사를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사용처를 명시하진 않았다. 유천권 단장은 사용처에 대해 요양병원, 요양시설 등 검사 대상자가 일정하고 주기적 검사가 가능하며, 검사 결과에 따라 후속관리가 가능한 곳 정도로 설명했다. 이후 이상원 단장이 “이득이 분명히 있는 사업장이면 업주의 판단에 따라 효용이 있을 수 있다”며 “예컨대 집단생활을 하거나 숙식을 같이 하거나 고도의 위험이 있는 사업장 같은 경우라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을 판단해 선제적 검사로 사용해볼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7~10일 후 키트가 인터넷과 약국 등에서 팔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장 5월부터 누구나 원하면 키트를 살 수 있게 됐지만 사용을 두고 당분간 혼란이 예상된다. 정재훈 가천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유행수준이 유럽이나 미국보다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가검사키트의 활용법을 찾기가 사실 어렵다”며 “특별한 사용처를 찾을 때 ‘굳이 쓴다면’ 식의 접근이 그래서 나오는 건데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에 더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제한적으로 쓰라고는 했지만 이를 강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무분별하게 쓰일 우려도 나온다.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노출이 의심되고 증상이 발현한 후 5~7일 이내의 경우에만 90% 정도 민감도가 유지된다. 5~7일 지나면 위음성이 나올 가능성이 굉장히 커진다”며 “약국에서 판매하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혹시 양성으로 나왔을 경우 키트를 쓰고 버리는 과정에서 자칫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사용법.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사용법.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약국이나 인터넷, 편의점 등에서 자가검사키트를 팔면 오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자가검사키트는 학교 교직원이나 어린이집 교사 등 매일 출근해야 하는데 주기적, 상시적 검사가 필요한 곳에서 사용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해외와 비교하면 코로나19 발생률이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자가검사키트의 접근성을 너무 쉽게 하고 시장에 그냥 맡기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현장에서 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발견하면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다른 한 사람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지만, 도입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가짜 양성을 PCR 검사로 다시 확진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부작용은 단점이지만, 이런 혼란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며 “혼란을 피하자고 아예 도입하지 않는다면 ‘자기주도방역’ 또는 ‘지역사회 주도 방역’의 장점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정부가 자가검사 결과에서 양성으로 나왔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잘 알려주고 안내해서 자가진단키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일이 크게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30%에 달하는 감염경로 미상 환자나 무증상 감염자를 선제적으로 잡아내기 위해서는 검사 건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는데 정부 주도의 검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비용은 개인이 내기도 하겠지만, 학교 기숙사,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공장의 사업주 등은 회사나 학교 차원에서도 검사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 교회나 친목 단체 모임에서도 자가검사를 자체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자발적인 검사를 늘려 확진자를 미리 잡아내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부담 원칙인 데 대한 논란도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자가검사키트는 공장 출하가 7000원으로, 실제 소비자가격은 1만원 안팎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이상원 단장은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검사 수단이 아니며, 개인이나 단체가 판단해 구매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혁민 교수는 “현재 요양병원에서는 5명의 검체를 혼합해 검사하는 ‘풀링’ 방식을 쓰는데, 수가가 6만원 정도라 1인당 비용이 2만원이 채 안 된다”며 “자가키트가 1만원이라 쳐도 여러 번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효율적이지 않아 얼마나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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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이태윤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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