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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인데 해외거래소서 코인 결제…'김치 프리미엄'에 카드사 곤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신용카드로 암호화폐를 싸게 산 뒤 국내 거래소에서 되팔아 차익을 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유튜브와 블로그에는 어떤 카드가 해외거래소에서 ‘뚫리는지’를 공유하는 성공담이 넘쳐난다.

국내 카드사들은 외국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결제가 되지 않게 망을 치고 있지만, 해외 가맹점 결제는 비자·마스터와 같은 브랜드사를 거쳐야 하는 데다 암호화폐를 사기 위한 결제라는 점이 즉각 드러나지 않아 아직 구멍이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비트코인 모형. 연합뉴스

비트코인 모형. 연합뉴스

신용카드를 이용한 암호화폐 차익 거래가 이뤄지는 것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때문이다. 김치 프리미엄은 똑같은 암호 화폐가 한국에서 유독 더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코인은 주식과 달리 한국거래소와 같은 중앙집권형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개별 거래소 단위로 거래가 이뤄지는 탓에 같은 코인이라도 거래소마다 가격이 다르다. 여기에 국내 투자자들의 강한 매수세와 공급(채굴량)과 수요의 괴리가 더해지며 김치 프리미엄이 낀다.

22일 기준 세계 1위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국내 거래소 업비트의 비트코인 가격 차이는 약 9%다. 이 경우 거래소 수수료와 신용카드 수수료를 빼면 약 4~6% 정도를 차익으로 쥘 수 있다. 김치 프리미엄이 20%에 이른 경우도 있어 차익 거래의 유인은 적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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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거래 대부분이 불법 소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일례로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신용카드로 주식과 펀드 등 금융 상품을 사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아직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가 금융 상품인지 아닌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카드는 지난 16일 “해외 암호화폐 거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의 입장에 따라 당사는 해외 가상화폐 관련 가맹점(거래소)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제한하고 있다”는 공지를 올렸다.

해외 암호 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한국 신용카드를 이용해 코인을 사는 방법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 [유튜브캡처]

해외 암호 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한국 신용카드를 이용해 코인을 사는 방법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 [유튜브캡처]

가맹점 정보 사후 통보…“100% 차단 어렵다”

카드사들의 이런 조치에도 “김치 프리미엄으로 시세 차익을 봤다”는 성공담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 가맹점에서 카드를 이용할 때는 국내 가맹점 결제와 달리 비자·마스터와 같은 브랜드사를 거쳐서 결제가 이뤄진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국내 카드사와 해외 가맹점이 직접 계약을 맺지 않기 때문에 가맹점 업종 정보나 코드를 일일이 알지 못한다”며 “예를 들어 한국인이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A비자카드로 비트코인을 사면 그때야 비자에서 A카드사에 결제 정보를 알려주는 사후 통보 방식이기 때문에 새로 문을 연 거래소에서 코인을 사는 사람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가맹점(해외 거래소)과 브랜드사(비자·마스터) 간 복수의 결제 라인도 사전 단속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대형 가맹점은 여러 개의 카드 결제 망(가맹점 번호)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동일 인물이 바이낸스에서만 수차례 코인을 사더라도, 카드사에서는 소비자가 각기 다른 가맹점에서 결제한 것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다.

[사진 여신금융협회]

[사진 여신금융협회]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국내를 예로 들면 높은 가맹점 수수료를 피하려 유흥주점이 일반음식점으로 둔갑해 가맹점 등록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처럼 해외 거래소가 가맹점 분류 코드를 고의로 속인다면 카드사가 이를 알아차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카드 결제 거래를 막은 암호화폐 거래소는 800여개다. 특정 거래소에서 카드 결제가 됐다는 후기가 올라오면 카드사에서는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잡듯 하나하나 결제를 막아왔다.

“암호화폐 무엇으로 정의하든 카드 결제 금지”

법무부와 기획재정부 등 유관 부처는 곧 암호화폐의 성격을 법률적으로 정의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암호화폐가 무엇인지에 대한 법률적 정의는 아직 없지만, 암호화폐를 진짜 화폐로 보든, 금융 상품이나 사행성 상품으로 보든 모두 카드 결제 금지 항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결제를 제한하고 있다”며 “곧 법적으로도 불법 여부가 명확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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