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피우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치고 고단한 삶. 가슴 깊숙이 빨아들이는 담배 연기 한 모금. 비록 몇 분이지만 흡연자의 마음은 잠시나마 평온을 되찾는다.

니코틴은 마약물질 중 가장 빠른 속효성을 자랑한다. 입으로 먹은 약물이 뇌에 이르는 시간은 30분 정도. 코 점막을 통해 흡입한 약물은 4분, 정맥으로 주사한 약물도 20초나 걸린다. 하지만 기체로 흡입한 약효는 불과 7초 만에 뇌에 도달한다. 인간이 담배만큼 짧은 시간에 손쉽게 위안을 주는 건강 기호품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담배는 인간의 뇌를 지배할 만큼 실로 오묘하다. 흡연자가 담배를 끊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물질이 작용한다. 하나는 타르고 또 다른 하나는 니코틴이다.

담배연기는 미립자 성분과 가스성분으로 나뉜다. 미립자가 바로 타르다. 우리말로는 댓진. 화학물질이 타고 남은 점액질을 지칭한다. 타르는 콜타르처럼 점성이 강하다. 폐 속에 엿처럼 눌어붙어 산소교환장치인 폐포를 망가뜨리고, 오랜 시간 독성을 내뿜어 폐암의 원인이 된다.

문제는 타르가 담배의 맛과 향기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독버섯처럼 타르의 양이 많을수록 맛과 향이 강하다. 담배 타르에는 4000여 종의 독성물질이 들어있고, 이 중 20여 종이 맹독성 발암물질로 알려지고 있다.

담배의 또 다른 강력한 중독 성분은 니코틴이다. 니코틴은 사실 유해물질은 아니다. 대신 중독성을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뇌를 통제한다.

담배를 끊기 어려운 것은 니코틴에 의해 가동되는 센서가 흡연자의 뇌에서 항시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니코스타트'로 불리는 이 센서는 혈액의 니코틴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온도가 떨어지면 저절로 작동되는 자동온도조절 장치와 원리가 같다. 혈액 내 니코틴 농도가 부족하면 초조하고 불안한 금단증상이 찾아오고, 이런 금단증상이 니코스타트를 다시 점화시켜 흡연 욕구를 자극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니코스타트를 잠재울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니코스타트는 평생 가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금연을 해도 이는 센서가 잠시 휴면에 들어가 있을 뿐 다시 니코틴에 노출되면 재빨리 불씨가 살아난다.

그렇다고 금연을 포기할 수는 없다. 금연에 실패했다고 자신의 의지를 탓하지 말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니코스타트의 전원 해제는 어렵지만 잠재울 수는 있는 것이다.

담배를 끊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금단증상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금연보조제를 사용할 수 있고, 흡연 욕구가 있을 때 스트레칭이나 목욕.껌 씹기 등 대체 활동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부터 해보자. 한창 일할 나이에 폐암이나 만성폐쇄성 폐질환에 걸려 처.자식 남겨두고 병상에서 쓸쓸히 고통받는 자신을 떠올려 보라. 올해는 실패했지만 밝아오는 2006년에는 반드시 금연에 성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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