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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방출 "갑작스럽다"는 정부…日은 "100번 설명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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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한 정부의 반대 입장은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조치였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지난 2018년부터 방류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대책은 추상적인 수준이라 2년 반 넘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공식 결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본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공식 결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① 한 “협의 부족” vs 일 “외교사절에 100번 설명”

정부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일본의 최인접국인 우리나라와 충분한 협의 및 양해 없이 이뤄진 일방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계획하는 구체적인 처분 방식을 비롯해 방류 개시는 대략 언제 쯤인지, 2년 후부터 방류할 총 처분량과 오염수 희석에 따른 방류 기간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지만 답변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즉, 오염수 방류 작업에 대한 ①처분 방식 ②방류 개시 시점 ③방류 기간 ④총량 등 핵심 정보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국 "일방적 조치" 반발에 일본 "100번 넘게 설명" 주장 #일본, 여론전 펼치고 미국 포섭할 동안 방류 결정 못 막아 #'국민' 내세워 반대하지만 실질적 대응책 제시 못 해

하지만 일본 측은 한국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고 필요한 정보도 공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보시 고이치 일본대사는 이날 외교부에 초치된 뒤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한국 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관계자와의 의사소통 결과를 참조했다”며 “한국에 사전 통지도 했는데, 일ㆍ한 관계의 중요성과 이 사안에 대한 그간 양국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 일본 대사관 측도 별도의 참고자료를 통해 “도쿄에서만 총 100회 이상의 외교단 대상 설명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미국까지 나서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같은 날 트위터를 통해 “(오염수 방류 결정을) 투명하게 하려는 일본 측의 노력이 감사하다”고 밝히면서 일본 편을 들어주는 형국이 됐다.

물론 그간 일본이 실시한 오염수 관련 설명은 대부분 방류 결정 정당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일본이 오래 전 속셈을 드러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2019년 8월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2018년 8월 일본의 오염수 해양방출계획에 대한 정보를 최초로 입수한 직후 2018년 10월 일본 측에 우리의 우려와 요청사항을 담은 입장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방침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방침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후 정부는 일본과의 양자 협의에서 해당 사안을 꾸준히 테이블에 올렸다.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워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박 논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주한 일본 대사관은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10주기를 계기로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오염수 문제 브리핑을 실시했다. 사실상 오염수 해양 방류로 방향을 정하고 안전성이 확보됐다는 근거를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외교 상대국 언론, 즉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는 결정 직전의 마지막 수순인데 이게 벌써 한 달 전이다.

이는 결국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등의 지지를 확보할 동안 한국은 무엇을 했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방류가 현실화할 경우 IAEA 차원에서 꾸려질 검증단에 한국이 참여할 수 있을지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정부는 IAEA 측에 방류 뒤 검증단이 꾸려질 경우를 가정해 이미 상당 기간 전부터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한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실제 오염수가 방출됐을 때 객관적 검증이 이뤄질 텐데, 그 국제 검증단에 한국도 참여하겠다고 IAEA에 요청해놓은 상황”이라고 확인했다.
문제는 실제 참여할 수 있을지가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물론 검증단 구성은 IAEA의 독립적 권한인 데다 방류 시점은 2년 뒤라 아직 본격적 논의가 시작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공식 입장에서 설명한 대로 이번 결정이 주변국가의 안전과 해양환경에 위험을 초래한다면, 적어도 일본을 상대로는 사전에 ‘최인접국인 한국은 검증단에 포함돼야 한다’는 데 대한 답을 확실히 받아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최근 몇년 간 급전직하한 한ㆍ일 관계의 수준을 봤을 때 이런 식의 긴밀한 사전 협의나 약속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②‘국민’ 내세워 반대하는 정부

정부는 공식 입장문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우리 국회,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가 모두 반대하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와 반대 입장을 일본 정부에 분명하게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은 IAEA(기준을) 이야기하지만,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우리)국민이 수용할 방식이 돼야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한국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과 기준이 무엇인지 정부조차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를 일본에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분석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정부는 우선 우리 국민이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정확하고 과학적인 사실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또 이를 보편적 관심이 필요한 글로벌 환경 이슈라는 차원에서 보다 큰 맥락으로 접근해야지, 한ㆍ일이 충돌하는 또다른 양자 간 갈등 이슈로 국한해서 인식하면 해결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후쿠시마 지역 모습 [AP, 교도통신]

지난 1월 후쿠시마 지역 모습 [AP, 교도통신]

③일본 의사에 달린 해결책 뿐

정부가 이날 발표한 해결책도 모두 지금까지 해왔던 조치들을 다시 거론하는 수준이거나 향후 일본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그만인 실효성 없는 조치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대책은 “우리 국민 피해 방지를 위한 조치를 일본에 강력히 요구하겠다”거나, 지금까지 일본이 제공을 거부했던 정보들에 대해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겠다”는 식이다. 이에 더해 제시한 “IAEA 등 국제사회에 우리 정부 우려를 전달하겠다” 등의 대책이 있지만 역시 원론적이고 추상적이다.
국제 사법 시스템을 활용해 일본의 책임을 묻는 등 보다 강제성 높은 조치도 거론되지만, 정부 당국자는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했을 때 문제가 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데이터를 모은 후에야 가능할지 싶다”고 말했다. 일본이 실제 오염수 방류에 들어가는 최소 2년 후부터야 검토가 가능하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구윤철 국무조정실장도 관련 질문에 “국제재판소에 제소하는 문제들은 저희들이 여러 가지 상황을 좀 검토해서 나중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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