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이매뉴얼 사에즈
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최상위 91%였던 소득세율 #88년 여·야 합의 28%로 #저커버그 소득세율 0% 가까워 #노동자가 절대 불리한 사회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한 원인을 두고 여러 각도의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세금 문제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공시지가의 급격한 인상으로 재산세 등 관련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유권자들이 분노의 표를 행사하는 대열에 대거 참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찌 보면 정치의 요체는 ‘세금’일지도 모르겠다. 큰 정부니, 작은 정부니 또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도 세금을 걷고 집행하는 방법과 규모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많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특히 선거 때마다 세금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는 최상위 수퍼리치들이 노동계급보다 사실상 세금을 덜 내는 미국의 불공정한 현실을 고발한다. 우리와는 조세제도가 많이 달라 수평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문제와 해법을 심도 있게 고민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51년부터 1963년까지 미국 최상위 구간의 소득세율은 ‘압류나 다를 바 없는’ 91%에 달했다. 극단적으로 높은 세율은 비합리적이기는 하지만 최상위층의 소득을 억제해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정부 시절인 1988년 이 세율은 28%로 뚝 떨어졌다. 성장의 핵심 동력은 민간 영역의 이윤 극대화에서 나오기에 세율을 최소화하고 정부의 주된 역할은 소유권을 옹호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이른바 ‘작은 정부론’이 힘을 얻던 시기였다. 집권 공화당은 물론 야당인 민주당까지 가세해 압도적인 다수로 세법 개정을 통과시킨 결과다. 지은이들은 이 과정을 미국 누진세의 종말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봤다.
미국 국민은 현재 평균적으로 소득의 28%를 연방세, 주(州)세, 지방세 등 각종 세금으로 내고 있다. 매년 1만8500달러를 벌고 소득 하위 50%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은 소득의 25%를, 상위 10% 계층은 28%를 세금으로 내지만 정작 최상위 400명은 23%밖에 내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소득 최고 계층에 누진세가 아니라 역진세가 적용되는 것이다. 트럼프 일가, 페이스북(페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그 가족,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집안사람들이 여기에 속할 텐데 이들은 평범한 철강노동자나 교사 같은 이들보다 낮은 세율로 소득세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저커버그는 페북 주식 20%를 보유하고 있다. 2018년 페북은 200억 달러의 이익을 냈는데 저커버그는 40억 달러의 소득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페북은 배당을 전혀 하지 않은 관계로 저커버그의 경우 단 한 푼도 소득세 과세 대상에 잡히지 않았다. 다른 억만장자들과 마찬가지로 저커버그의 실질적 개인소득세율은 0%에 근접할 것이다. 케이먼제도로 법인을 돌려놓은 페북은 법인세조차 내지 않아도 됐다. 2008년 이래 매년 40%씩 재산을 증식해 현재 재산 규모가 600억 달러에 달하는 억만장자가 완전히 합법적으로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것이 과연 있을 법한 일인가.
세계화와 조세회피가 대단한 노하우가 되고 있는 시대에 법인세가 12.5%밖에 되지 않는 아일랜드를 애플이나 구글이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뿐 아니라 화이자, 씨티그룹, 나이키, 피아트, 케링 같은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합법적으로 조세회피에 동참하고 있다고 이 책은 고발한다.
2018년 트럼프는 미국의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내렸다. 기업들을 독려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묘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세정의를 외면한 처사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법인세 인하로 부자들은 어렵지 않게 법인을 만들어 그 뒤에 숨어 소득의 큰 부분을 아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이 노동과 자본에 골고루 세금을 부과했던 제도에서 이탈해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에 더 우호적인 시스템을 만들면서 노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법인세율, 소득세율 인상 등 증세와 재산세 폭탄이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에선 조세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풍부한 조세 관련 데이터, 더욱 정교한 논리와 설득력으로 무장한 한국판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의 출판을 기다려 본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