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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한·미관계 '가스라이팅' 상태…동맹 간 못할 말 없어야"

중앙일보

입력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30일 공개한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새로 읽는 한미관계사'에서 한‧미동맹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립외교원장 저서서 "한‧미 동맹은 가스라이팅 상태" #외교부 "원장 저서와 관련 없이 한‧미 동맹 입장은 동일" #김 원장 "동맹은 '못할 말' 없어야…입장 적극 개진 필요"

김 원장은 해당 저서의 15페이지에서 19페이지에 걸쳐 한‧미 동맹에 대해 설명하며 "자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태도 앞에서 주권국이라면 응당 취해야 할 대응을 하지 못하는 한국의 관성을 일방적 한미관계에서 초래된 '가스라이팅'(gaslighting) 상태"라고 썼다. 가스라이팅은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용어로 상대방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압박하는 행위를 뜻한다.

김 원장은 또 "한국은 오랜 시간 불균형한 한·미관계를 유지하느라 애쓴 탓에 합리적 판단을 할 힘을 잃었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희박해진 상황"이라며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발언과 행위는 맹렬하게 공격받고 ‘빨갱이’와 ‘친북’으로 낙인찍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동맹 중독’을 극복하고 상호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건강한 한·미관계를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30일 공개한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새로 읽는 한미관계사' 표지 [창비]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30일 공개한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새로 읽는 한미관계사' 표지 [창비]

하지만 이 '가스라이팅' 비유를 두고 국립외교원 수장의 발언으로는 적절하냐는 논란이 나왔다.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격인 국립외교원의 원장은 정부 내에서 차관급 직위다.

이같은 논란에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동맹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며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으로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지역의 평화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고 앞으로 더 굳건한 발전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중앙포토]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중앙포토]

김 원장은 이에 대해 "5년간 작업해 평소의 소신을 담은 것인데 책 전체의 맥락보다는 특정 표현만 부각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은 일부 보수 학자들이 '문재인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거나 '북한이 남한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한 반박 논리로 쓰게 된 것"이라며 "가스라이팅은 압도적인 강자가 약자에게 행사하는 것으로 남북 관계에는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미국도 우리에게 협상의 대상이고 국익을 위해선 한‧미 간에 얼마든지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면서 "상호 동맹은 '못할 말'은 없는 관계가 돼야 하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면 미국도 우리에게 충분히 귀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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