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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해법과 거리 먼 ‘부동산 빅브라더’ 시장만 통제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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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06면

부동산거래분석원 추진 논란 

부동산 교란·불법 행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부동산거래분석원 설립이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은 지난해 ‘부동산 빅브라더(정보를 독점하는 절대권력)’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지만, 최근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재발 방지 차원에서 부동산거래분석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을 실시간 감시해 투기 여지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LH 사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정, 투기 차단 핑계로 밀어붙여 #국민 계좌·세금 조회 막강한 권한 #개인 정보·재산권 침해 소지 있어 #“정부 규제로 시장 더 왜곡될 것” #‘감독기구 만능주의’ 안일한 인식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19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LH 사태 대책으로 ‘부동산거래분석원’과 같은 감독기구를 설치해 시장 모니터링과 불법 단속을 상시화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LH 사태를 언급하며 “비정상적 부동산 거래와 불법 투기를 감독하는 기구 설치 등 근본적 제도 개혁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애초에 부동산거래분석원 설치를 주장한 것도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당시 국토교통부 산하 ‘부동산불법행위대응반’ 인력만으로는 부동산 거래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과 탈세 등을 감시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이를 확대 개편해 상설 부동산 감독기구를 두자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불법적인 부동산 투기를 잡아 집값을 안정화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제안한 부동산 감독기구는 구체적인 안이 나오기도 전에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9월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선 부동산 감독기구는 헌법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거래를 하나하나 감독하고 개인의 금융 거래를 전부 감시하겠다는 발상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정부 내에서조차 부동산시장에 대한 별도 감독기구를 설치하는 데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개인적으로는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에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당정은 ‘감독기구’란 표현 대신 슬그머니 ‘부동산거래분석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설치를 공식화했고, 11월 부동산거래분석원의 법적 근거를 담은 법안도 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부동산거래분석원은 담합이나 투기, 시세 조정, 기타 교란 행위가 의심되면 법인·개인의 계좌 조회는 물론 세금 조회 등을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시장에선 개인 정보 및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재산권 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법안은 이상 거래 관련 정보를 최소한으로 요청할 수 있고, 제공된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관리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하지만 그 범위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최시억 국회 국토교통위 수석전문위원도 “법인·개인의 금융·신용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사유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여당조차도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은 그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LH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여당이 다시 부동산거래분석원 설치를 주장하면서 속도가 붙고 있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을 가동했다면 LH 투기 같은 신도시 지역의 이상 거래 급증 현상을 사전에 포착할 수 있었을 것”(양경숙·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는 논리다. 여당 내에선 올 상반기 출범도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시장에선 당정이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위헌 논란은 차치하고 LH 사태의 해법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집값 관련 민간 통계를 계속 부정하고 있는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려는 의도”라며 “소비자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부동산시장을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정부 규제로 시장은 더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 세계에서 부동산 감독기구를 둬 시장을 상시로 감독하는 곳은 없다”며 “시장은 투기꾼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실수요자가, 이상 거래가 아니라 정상거래가 움직이는데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자꾸 시장으로 돌리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과 같은 감독기구가 있음에도 ‘라임·옵티머스 사건’ 등 금융권 비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당정의 ‘감독기구 만능주의’가 안일한 인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이른바 ‘LH 5법’ 중 3개 법안 국회를 통과했지만 부동산거래분석원은 여전히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부동산거래분석원 법안은 개정안이 아니고 새로 만드는 법안인 만큼 국회법에 따라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하는데, 야당은 공청회를 열자는 여당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 야당 측은 “LH 사태가 부동산거래분석원 설치를 해야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제정법인 만큼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빅브라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는 정보를 독점해 사회를 통제하려는 절대권력이다. 빅브라더는 사회 곳곳에,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텔레스크린을 설치하고 사회를 감시한다. 텔레스크린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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