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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큰 병 걸리면 "쪽박"?

중앙일보

입력

사례 1=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직장인 A씨. 두달간 회사에 나갈 수 없었다. 월급을 받지 못했음은 물론 가입한 의료보험에서 일부 치료비를 지급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납 의료비가 1만3000달러(약 1300만원)에 달했다.

사례 2=폐수술과 심장병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직장인 B씨. 퇴원 후 직장을 잃었다. 새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고용주가 내야 하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아무도 병력이 있는 그를 써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A씨와 B씨는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지난 2일 하버드대 조사자료를 인용, "의료보험에 가입했으면서도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사람이 전체 파산자의 절반가량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대 법대와 의대 연구팀이 2001년 파산신청자 1771명을 조사한 결과 이 중 28.3%가 파산 원인을 '질병 또는 부상'이라고 답했다. NYT는 "해마다 아동 70만명을 포함, 200만명 이상이 이 같은 의료파산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파산신청자 대부분이 중산층 직장인이다. 의료파산자들이 발병 이후 지불한 치료비는 평균 1만1854달러. 이들 중 75.7%가 발병 당시 보험가입자였다.

의료파산의 주원인은 보험으로 처리되지 않는 비용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 국민건강보험 체제인 우리나라와 달리 민간보험을 주로 하고 있다. 공적 의료보험 제도는 65세 이상 노인.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어와,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 정도다. 일반 국민은 민간보험에 가입한다. 보험에 전혀 들지 않은 사람도 많다. 지난해 전 국민의 15.6%에 해당하는 4500만명이 미가입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개인책임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의 의료보험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비가 일정 한도를 넘을 경우에 대비한 보험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보험의 혜택을 받을 때면 이미 파산한 뒤일 때가 많아 사후 약방문에 그치고 있다.

병에 걸리거나 다쳐 직장을 잃게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하버드대 연구팀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는 "대다수 미국인의 의료보험이 직장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아파서 일자리를 잃게 되면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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