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의 건강 이야기] 지병 있다면 폐렴 예방 주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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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렴만큼 문학과 친숙한 질병도 드물다. 오 헨리의 단편인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도 폐렴으로 사경을 헤맸으며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도 루벤스 그림 앞에서 폐렴을 앓다 얼어 죽었다. 늘그막의 대문호 미당 서정주와 톨스토이의 생명을 앗아간 질환도 폐렴이었으며, 37세로 요절한 일본의 천재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가 '은하철도 999'의 영감을 얻은 것도 폐렴이었다.

폐렴이 문학 작품과 문학가의 생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불과 며칠 사이에 생과 사를 경험할 수 있는 극적인 병이기 때문이다. 폐렴은 인간의 고뇌와도 관련이 있다. 가톨릭의대 내과 박성학 교수는 "건강한 젊은 사람이라도 극심한 실연의 고통에 시달리면 폐렴을 앓기도 한다"고 말했다. 마음의 고통이 면역력의 저하를 낳기 때문이다.

폐렴은 말 그대로 폐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개 감기 뒤끝에 온다. 정상적인 면역력을 갖고 있다면 감기 바이러스는 코나 입에 머무르거나 기껏해야 목을 침범하는 정도다. 그러나 심한 스트레스나 당뇨와 폐기종, 알코올 중독, 간질환 등 지병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사람은 감기로 인한 염증이 폐까지 퍼지면서 폐렴이 생길 수 있다. 장기 이식을 받았거나 항암제 투여를 받는 암환자도 폐렴에 잘 걸린다. 결론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경우라면 모두 폐렴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폐렴은 응급질환이다. 고열과 기침, 호흡곤란에 시달리다 불과 며칠 사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폐렴은 우리나라 전체 입원환자의 4.45%를 차지하며 해마다 28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흔한 병이다. 미국에서도 해마다 6만여 명이 폐렴으로 숨진다. 그런데도 폐렴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폐렴이 개별 질환이라기보다 개별 질환에서 파생된 합병증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뇨 환자가 숨지면 사망원인은 당뇨로 기록되지만 숨은 원인인 폐렴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인들이 여러 가지 만성질환을 앓다 최종적으로 숨질 때 도화선 역할을 하는 병이 바로 폐렴이다. 여기서 평소 지병인 만성질환을 기름이라면 폐렴은 성냥불에 비유할 수 있다.

폐렴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가 예방백신을 맞는 것이다. 전체 폐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폐렴구균이란 세균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이미 개발돼 있기 때문이다. 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65세 이상의 노인^심장병이나 호흡기질환, 당뇨, 알코올 중독, 만성 간질환 등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이즈나 백혈병, 각종 암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에 대해 폐렴 예방백신을 맞도록 권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의사는 물론 환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폐렴 예방주사 접종률이 매우 낮은 편이다. 물론 면역력이 정상인 건강한 사람은 폐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위험계층에겐 예방이 최선이다. 가까운 의원을 찾으면 되며 대개 1회 접종으로 10년 이상 면역력이 지속하므로 독감처럼 매년 맞을 필요도 없다. 비용은 4만~5만원 정도다. 독자 여러분에게 65세 이상 노인이나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지병을 앓고 있는 분이 있다면 독감주사뿐 아니라 폐렴 예방주사도 맞을 것을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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