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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자국' 없어도 아동학대 의심되면 즉각분리...쉼터확보 관건

중앙일보

입력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4차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양부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4차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양부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오는 30일부터 학대 피해 의심 아동을 보호자와 즉시 떼놓는 분리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지금까진 학대 정황이 명확하고 위급성이 인정돼야만 ‘응급조치’ 제도를 통해 분리가 가능했다. 이 때문에 학대가 의심돼도 떼어놓을 수 없었다.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정황 아닌 의심만 들어도 즉각 분리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아동복지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의결됐다. 앞서 지난 1월 19일 복지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의 후속 조치다. 즉각 분리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명확한 학대 정황 없이도 의심만으로 분리가 가능하다. 1년 안에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거나, 보호자가 아동의 답변을 방해한 경우가 해당한다. 아동을 보호할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 등도 포함됐다.

즉각 분리 조치는 전담 공무원과 경찰이 협의해 결정하되, 이견이 있을 경우 최종 결정권은 전담 공무원에게 두도록 했다. 지자체는 분리 결정 이후 7일 이내에 가정환경이나 행위(의심)자ㆍ피해(의심) 아동ㆍ주변인 등을 추가 조사하고 피해(의심) 아동의 건강검진을 통해 학대 여부를 조사하게 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아동에 대한 추가 보호조치를 결정하게 된다.

응급조치, 명백한 학대일 때만 ‘소극적’ 적용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4차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양부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뉴스1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4차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양부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뉴스1

이런 제도는 기존 ‘응급조치’ 제도(아동학대처벌법 제12조)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현행 응급조치 제도는 심각한 멍이나 상처 등 명백한 증거가 발견됐을 경우에만 격리 보호 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극적인 대처라는 지적이 일었다. 양부모의 학대·방임으로 숨진 ‘정인이 사건’에서도 입양된 후 3차례에 걸쳐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경찰과 아동보호 기관은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냈었다.

또 응급조치의 경우 72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없어진다. 이 때문에 공백 문제도 지적돼왔다. 물론 72시간 후에는 사법 경찰이 검찰에 긴급 임시조치 청구를 요청해 분리 조치를 이어갈 수 있으나 검사가 이를 청구하지 않거나 법원이 결정하지 않으면 아이는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복지부 아동학대대응과 관계자는 “이런 허점 때문에 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어 즉각 분리제도가 도입됐다”고 말했다.

다만 응급조치와 혼선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즉각 분리제도의 경우 필요성이 인정되긴 하지만 일각에선 과잉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며 “때문에 사법 중재가 들어가 있는 응급조치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본 후 보완적 차원에서 즉각 분리제도가 시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쉼터 약 30곳 추가…각 지자체에 전담공무원 배치도

10일 북구청직장어린이집에서 광주 북구 여성가족과 아동보호팀 직원들이 아동학대 예방 상황극을 통해 아이들이 학대를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10일 북구청직장어린이집에서 광주 북구 여성가족과 아동보호팀 직원들이 아동학대 예방 상황극을 통해 아이들이 학대를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 구축이다. 학대 여부를 판단할 전담공무원과 분리된 아동이 생활할 쉼터 마련이 필수적이다. 최종균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학대피해 아동 쉼터 15곳이 이번 상반기 중 운영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추가로 14곳 이상의 쉼터를 올해 안에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기준 학대피해 아동 쉼터는 전국에 총 76곳이다. 약 500명의 아이가 생활할 수 있다. 현재 383명의 아이를 보호 중이다. 여기에 쉼터 29곳이 추가되면 200여명을 더 수용하는 게 가능해진다.

또 복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160개 시ㆍ군ㆍ구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453명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150여명에 대해서도 채용을 이어가 올해까지 예정됐던 664명의 전담공무원 배치를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전담공무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업무 배치 전 파견 교육 시간은 기존 80시간에서 160시간으로 확대했다.

2세 이하 피해 아동은 '보호 가정에서'

이 외에 2세 이하의 피해 아동은 4월부터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200여개 가정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위기아동 가정보호사업’도 신설했다. 보호 가정의 경우 양육자의 나이가 25세 이상이다. 다만 아동과의 나이 차이가 60세 미만이어야 한다. 여기에 안정적인 소득 등 관련 자격 기준도 갖춰야 한다. 복지부는 현재 총 300가정이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즉각 분리제도가 아동의 소중한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는 제도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제도를 시행할 때 아동의 의사를 존중하고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고려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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