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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였던 레이건, 영화 보고 사이버전 지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28호 21면

사이버전의 은밀한 역사

사이버전의 은밀한 역사

사이버전의 은밀한 역사
프레드 캐플런 지음
김상문 옮김
플래닛미디어

1983년 나온 할리우드 영화 ‘War Games’가 있다. 국내에서는 극장에서 개봉되지는 않았지만 ‘위험한 게임’이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출시됐고, TV에서는 2년 후 ‘해커 대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박사가 핵미사일 발사 훈련에서 인간이 실수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컴퓨터 인공지능으로 교체하려 한다. 천재 고등학생 해커가 우연히 NORAD의 시스템에 침투했다가 핵무기 시뮬레이션 게임을 새로 나온 컴퓨터 게임으로 착각해 제3차 대전을 일으킬 위기가 찾아온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은 영화배우 출신이다. 당연히 이 영화를 봤다. 그는 국무장관 등과의 핵무기 군축협상 회의 도중 이 얘기를 꺼냈다. 그는 존 베시 합참의장에게 “미국의 가장 민감한 컴퓨터 시스템을 뚫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베시는 일주일 동안 이를 검토한 후 “대통령님, 생각하시는 것보다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합니다”라고 보고했다.

퓰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한 저자는 “미국 대통령 또는 백악관이 훗날 사이버전이라고 부르게 될 주제를 다룬 최초의 사례”라고 썼다. 책은 미국이 사이버전에 대비해 어떻게 NSA(국가안보국)를 강화했는지, 러시아·중국·이란·북한 등에 맞서 어떻게 사이버 방어와 ‘공격’을 수행했는지의 역사를 담았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법사찰,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도 다뤘다.

중국의 해커 집단 홍커(紅客)연맹(Red Hacker Alliance)의 한 회원 모습. [AFP=연합뉴스]

중국의 해커 집단 홍커(紅客)연맹(Red Hacker Alliance)의 한 회원 모습. [AFP=연합뉴스]

영화 같은 사이버전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소개한다. 1990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신호를 가로채 대지휘통제전을 승리로 이끈 사막의 폭풍 작전, 98년 10대 소년이 미국 주방위군 컴퓨터를 해킹한 솔라 선라이즈 사건, 중국 해커부대인 62398부대의 미국 방산업체 등에 대한 사이버 공격, 2007년 반러시아 유혈충돌이 벌어진 에스토니아에 러시아가 개입해 나라 전역을 마비시킨 사건, 이스라엘의 시리아 방공 레이더 시스템을 무력화한 사건 등이다.

2014년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도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를 자칭 ‘평화의 수호자’ 해커들이 침입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공격에 비례하는 대응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며칠 뒤 북한의 인터넷이 10시간 동안 먹통이 됐다.

사이버전은 과거 스파이를 이용한 정보전과는 다르다. 사이버 시대에는 해커가 정보를 못 읽게 하거나, 조작하는 등 내용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패닉에 빠뜨리게 된다. 2016년 미국 대선처럼 다른 나라의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해킹으로 부자들의 돈을 빼돌려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영화 ‘스니커즈’(1992)에서 주인공은 “세상은 더는 무기나 에너지, 돈으로 움직이지 않아. 세상을 움직이는 건 0과 1이야”라고 말한다. 2017년에 발간된 책을 번역한 것이어서 이후 최신 내용이 없는 건 아쉽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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