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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권 이슈 명확히 했는데···외교부 "우리말 경청 모드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한ㆍ미 외교ㆍ국방(2+2) 장관회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빠진 데 대해 “우리의 의도를 미국이 수용한 결과”라며 이를 성과로 표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 목적에 대해서는 “우리 말을 경청하는 모드로 온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뉴스1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뉴스1

최 차관은 1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공동성명에 중국 관련 내용이 빠진 데 대해 “한ㆍ미가 성명을 내는데 3국을 겨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중국을 뺀 것은 우리가 중국과 경제적 문제로 헤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 우리 뜻이 반영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일견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옳다”며 “확실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의도가 그런데 이를 미국이 수용해서 공동성명으로 나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행자가 “그 대목이 성과인 것 같다”고 하자 “그렇다. (미ㆍ중)양립론이 옳다. 선택은 아닌 것 같다”고 동의했다.

비핵화 빠졌는데 "완전한 조율이 중요" 

공동성명에 ‘비핵화’가 빠진 데 대해서도 최 차관은 “완전한 조율을 통해 곧 미국이 발표할 대북정책 리뷰를 끝내자는 것이고, 블링컨 장관은 가장 중요한 핵심 이해 당사자인 대한민국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행자가 ‘일부 보수매체는 이번 방문이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거꾸로 우리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냐’고 묻자 최 차관은 “그렇다. 일종의 리스닝, 경청 모드로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공개발언을 통해 블링컨 장관 등이 낸 메시지의 내용과 수위를 보면 이를 단순한 리스닝 투어로, 또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빠진 것을 성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블링컨 장관의 방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억압적인 북한’과 ‘반민주적인 중국’의 인권 유린 등 규범 위반 행위에 대해 동맹이 함께 맞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블링컨은 “인권, 미국 외교의 중심”

특히 블링컨 장관은 18일 KBS와 SBS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과 관련한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인권과 민주주의를 미국 외교 정책의 중심에 다시 놓겠다고 명확히 했다. 이는 선택적 기반을 갖고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외교가는 ‘선택적 기반(selective basis)’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인권 문제는 보편적 가치이므로 상대를 가려가며 제기할 것이 아니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식이 함축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2017년 12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브라이언 훅 국무부 정책국장이 같은해 5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보낸 메모를 입수해 보도했다. 메모에서 훅 국장은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과의 관계에서 인권 문제를 중요한 이슈로 고려해야 한다”며 “하지만 동맹들은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 선택적 접근을 주문했다. 동맹에도 똑같이 인권을 문제삼다가는 반미 세력이 집권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였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이 중시해온 가치를 포기하려 한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바이든의 '가치 외교'는 동맹도 대상

바이든 행정부가 ‘가치 외교’를 추구하는 것도 이런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과오를 바로잡는 게 목적이다. 블링컨 장관이 쓴 ‘선택적 기반’이란 표현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셈이다. 인권 문제에서는 이중잣대를 배격, 동맹도 다르게 대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대북전단금지법과 북한 어부 북송 등으로 유엔의 우려 표명 대상이 된 정부가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다. 동맹 간 갈등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에서 북ㆍ중 인권 문제가 빠졌다고 좋아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인식일 수 있다.

18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ㆍ중 고위급회담. AP=연합뉴스.

18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ㆍ중 고위급회담. AP=연합뉴스.

국무부와 주한 미 대사관은 두 방송사가 뉴스로 내보낸 내용이 아니라 인터뷰 전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블링컨 장관의 메시지가 온전히 한국 대중에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블링컨, 매번 “북한 비핵화”

최 차관은 공동성명에서 비핵화가 빠진 것도 조율된 결과라는 점만 강조했지만, 블링컨 장관은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라고 명확히 해 인식 차를 드러냈다. 또 동맹의 의견을 중시한다고 한 것은 맞지만, 이는 한국만 뜻한 것도 아니었다. 대북 정책 리뷰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일본도 함께 언급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공동성명에서 중국 문제와 북한 비핵화를 뺌으로써 미국이 어떤 인식을 가질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가 전략적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일지 따져봐야 하는데, 정부는 미국의 의도를 읽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불편한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만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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