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길 편하고 품위있게] 폐암 부인 떠나보낸 임현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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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열흘, 아니 닷새만이라도 집 온돌방에서 지내다가 눈을 감게 해줬어야 했는데…. 그나마 중환자실에서 이것저것 꽂고 외롭게 떠나지 않게 해준 게 다행입니다."

지난달 4일 경기도 일산시 SBS스튜디오. 드라마 '작은 아씨들' 마지막회 촬영 현장에서 만난 탤런트 임현식(59)씨는 부인 서동자(53)씨를 잃은 슬픔으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서씨는 폐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 9월 29일 숨졌다.

서씨가 암 선고를 받은 것은 올해 1월 초. 허리 통증이 계속돼 병원에 갔다가 간.늑골까지 종양이 퍼진 폐암 4기임을 알게 됐다. 처음 4~5개월 통원하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서씨는 본인보다 출가 전인 세 딸 걱정을 더 많이 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언제 예식장에 가야할지 모르는데 머리가 빠지면 어쩌느냐"고 했다. 8월 중순, 뇌압이 올라가며 서씨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암 세포가 뇌로 퍼졌기 때문이다.

뇌 수술을 위해 머리를 깎은 아내의 모습은 임씨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수술도 소용없었다. "담당의사한테서 '가망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병원에서 나올 수 없더라고요."

처가 식구들과 의논해 아내를 중환자실에 보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국 서씨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임씨 품 안에서 숨을 거뒀다.

임씨는 이번 일을 겪으며 암 환자나 그 가족을 위한 체계적 시스템이 너무 부족한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암 환자나 가족들에겐 무엇보다 하소연을 들어주며 차분히 상담해줄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해요. 오죽하면 제가 병실 청소하는 분을 붙잡고 아내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곤 했겠어요. 암환자를 다루는 의사나 간호사한테는 어떤 지침 같은 게 있어야 합니다."

임씨는 또 "환자가 '가망없다'고 판단될 때 의사는 환자와 그 보호자에게 반드시 알리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인생을 정리하고 어떻게 임종할지 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8월 국립암센터에 1억원을 기부한 임씨는 "다른 암 환자들은 우리 같은 고통과 후회가 없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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