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에만 집중타 "방사선 폭탄" 빛본다

중앙일보

입력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암 세포만 골라 죽이느냐다. 항암제나 방사선은 눈이 달려 있지 않아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암 치료의 부작용은 이래서 생긴다.

지금 일본과 유럽에서는 암세포에서만 터지는 방사선 폭탄 치료법이 대유행이다. 완치율이 획기적으로 높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나 치료과정의 번거로움이 기존의 방사선 치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핵물리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중(重,무겁다는 뜻)입자 가속기를 암 치료에 이용한 결과다. 중입자 가속기는 탄소.네온 등 양성자보다 무거운 원자의 핵을 빛의 속도에 근접하게 초고속으로 가속해 각종 물리학 실험에 이용한다. 방사선 폭탄은 이렇게 가속된 중입자를 암세포에 쏘아 암세포에서만 다량의 방사선을 내도록 한 데서 붙여진 것이다. 방사선은 암 세포의 DNA 사슬을 끊어 죽인다.

1994년 일본 지바현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에 설치된 중입자 가속기를 암 치료에 활용했을 때는 그 효과에 대해 방사선 의학자들도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1600명을 치료한 결과 폐암의 경우 완치율(5년 생존율)이 67%, 전립선암 87%, 3년 생존율은 간암 57%, 뇌암 80%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암 평균 완치율이 38%라는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치료 효과다.

현재 세계적으로 암 치료용으로 중입자 가속기를 가동하고 있는 곳은 일본 두 곳,독일 한 곳 등 세 곳밖에 없다. 그러나 예상 외의 치료효과가 나오자 일본과 유럽 각국이 방사선 폭탄 치료시설을 하느라 부산하다. 일본 군마대학병원이 새로운 시설을 준비 중이고,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병원, 프랑스 리옹, 이탈리아 밀라노 파비아, 오스트리아 비너 노이스타트 등이 건설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산 기장군에 이 시설을 독자 건설하기로 한 상태다. 관련 기술은 원자력의학원에서 개발했다. 한 기당 건설 비용은 1000억원 정도 든다.

기존 방사선 치료는 빛의 일종인 X선 또는 감마선을 암세포에 쪼여 주는 식이다. X선과 감마선은 피부와 뼈 등을 거쳐 암세포까지 도달하는 동안 정상 세포를 많이 죽이는 부작용이 있다. 처음에는 빛이 세고 몸 속에 들어가면서 점점 약해져 정작 암세포에 도달했을 때는 비실비실해진다. 암 세포 살상 효과가 떨어지는 이유다.

그러나 방사선 폭탄은 X선이나 감마선보다 훨씬 무거운 탄소 등의 원자의 핵 알갱이를 암세포에 퍼붓는 것이다. 초당 10억개 정도를 쏜다. 탄소 등 무거운 원자의 핵은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울수록 너무 빨라 살을 뚫고 들어만 가고, 그 속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느려질 때 방사선을 대량으로 내 뿜는 성질이 있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를 때는 방사선을 내뿜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원자력의학원 사이클로트론응용연구실 채종서 박사는 "방사선 폭탄은 원자의 핵에 얼마만큼의 전기를 가하면, 몸속 몇 ㎝쯤에서 방사선을 대량으로 내뿜는지를 알아내 암 치료에 이용한다"며 "방사선 폭탄이 터지는 지점은 10분의1㎜까지도 조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자당 전기의 세기를 가감하면 가능하다. 몸속 28㎝에서 방사선 폭탄이 터지게 하려면 탄소 핵 한개당 4억 전자(e)V를, 14. 5㎝는 2억7000만 전자V를 걸어준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이 많은 서양에서는 큰 입자 가속기를 설치한다.

방사선 폭탄 치료는 한 번에 30~60초, 1 주일 동안 서너번만 받으면 끝난다는 게 일본 중입자 가속기 관계자의 말이다. 일본에서 이 치료를 받으려면 전체 치료비가 3000만원 정도 든다. 기존 방사선 치료는 한번에 20~30분씩 4개월을 받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