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남기고 떠난 "레모네이드 소녀"

중앙일보

입력

여덟살 소녀가 판 것은 레모네이드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사람들이 50센트짜리 동전과 바꾼 건 레모네이드 한잔만이 아니었다. 소녀는 용기와 박애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줬다.

지난 4년간 거리에서 레모네이드를 팔아 암 연구기금을 모아온 소아암 환자 알렉산드라 스콧(8)이 1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자신의 집에서 삶의 날개를 접었다.

미국 언론은 숨을 거두는 최후의 순간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이 '레모네이드 천사'의 죽음을 일제히 애도했다.

'앨릭스'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 소녀가 죽기 전까지 모은 돈은 75만달러(약 8억7000여만원). 생전 희망했던 액수는 100만달러였다. 앨릭스의 부모는 이 돈을 생전에 딸이 치료받았던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 소아암 퇴치 기금으로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앨릭스의 부모가 딸의 몸속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첫 돌이 되기 불과 이틀 전이었다. 병명은 소아암의 일종인 신경아세포종양. 이후 수년간 앨릭스는 여섯번의 종양 절제 수술을 받았고 셀 수 없이 잦은 화학 치료를 견뎌내야 했다. 네살이 되던 2000년 어느 날 앨릭스는 부모에게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레모네이드를 팔아 그 돈으로 '내 병원'을 지을래요."

부모는 그게 될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있게 말했다.

"돈이 많이 모이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어쨌든 한번 해볼래요."

소녀에겐 자신처럼 고통받는 아이들을 낫게 해주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졌다. 소녀는 자신의 동네에 레모네이드 판매대를 설치한 뒤 한잔에 50센트씩 받고 레모네이드를 팔았다. 첫 해에 2000달러가 모였다. 언론을 통해 사연이 알려지면서 소녀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앨릭스의 레모네이드 판매대'캠페인은 필라델피아 재단에 위탁돼 미국의 50개 주에는 물론 프랑스와 캐나다에서도 모금 활동이 전개됐다. 지난해 어떤 날은 하루에만 1만2000달러가 모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가냘픈 천사가 태우는 마지막 불꽃을 외면하지 않았다. 다들 지갑을 기꺼이 열었다. 판매를 돕겠다는 자원봉사자들도 늘어났다. 볼보 등 기업들도 '100만달러 모으기'에 동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녀의 꿈만큼 소녀의 몸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병원에는 이제 그만 가는 게 소원"이었던 앨릭스의 병세는 6월 이후 급격히 악화했다. 8년을 병마와 싸운 소녀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숨을 거둘 때 큰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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