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엉터리 혈액관리"로 "혈액파동" 자초

중앙일보

입력

에이즈 혈액이 유통된 사실이 검찰수사결과 재확인되면서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한 헌혈량 부족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수혈에 대한 국민불안도 심화되고 있다.

29일 대한적십자사 등에 따르면 헌혈량은 지난 2월과 3월만해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 0.7% 증가했지만 4월 들어서며 10.5%나 추락한 이후 5월에는 16.9%, 6월 12.3%, 7월 20.1%(28일 현재)의 감소세를 보였다.

빈혈 수혈용인 적혈구 농축액 재고량은 O형, A형이 1일 평균 소요량에도 못미칠만큼 바닥이 난 상태이고 백혈병 등 치료용인 혈소판 농축액의 재고량도 하루 필요량을 겨우 넘긴 상태다.

지난 3월 감사원의 혈액안전 관리실태 감사결과가 공개된 이후 줄곧 하락하던 헌혈량은 보건복지부 조사결과와 검찰의 수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급전직하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4월 이후 헌혈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학생과 군인들의 단체헌혈이 지난해와 비교할 때 매달 2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기에는 혈액 관리를 소홀히 한 적십자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한몫을 하고 있다.

'혈액파동'이라는 수식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른 헌혈량 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엄격한 혈액관리를 통해 헌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종식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검찰은 지적한다.

검찰은 우선 에이즈 바이러스 잠복기 상태에 있는 혈액은 가려낼 수 없는 '무방비' 상태인 점을 감안할 때 문진(問診)을 강화해 에이즈 감염 위험에 많이 노출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헌혈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헌혈 기록카드에는 '에이즈 검사를 목적으로 헌혈할 경우 상담원에게 말해달라'고 적혀 있어 오히려 헌혈을 에이즈 검사의 기회로 제공해 에이즈 감염 위험군 집단을 헌혈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나 검찰은 헌혈량 급감대책 마련에만 급급할 뿐 팽배해진 수혈 불신 현상을 어떻게 치유할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이 없는 상태다.

국내 등록된 혈우환우 1천704명중 37%인 632명이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통계를 감안해 보면 환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엉터리 혈액인 줄 알면서도 수혈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검찰은 이에 따라 혈액 검사실의 검사결과에 대한 검증절차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검사 오류를 찾아내는 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혈 과정뿐만 아니라 뒤늦게 유통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비상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에이즈 등 주요 질병의 전산체계를 통합 관리해 운영하는 등 연관 부서의 유기적인 협력체제와 기관별 책임소재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검찰은 이와함께 "혈액관리업무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임에도 현재 적십자사의 혈액사업부본부장과 전국 16개 혈액원장 중 의사는 한 명도 없다"며 "혈액 사업본부 간부진에 의료인을 충원해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혈액관리법상 의사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채혈과 채혈량 결정도 실제적으로는 간호사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의사가 문진을 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연합뉴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