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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위축, 암울한 고용…수출 호조에도 올해 3% 성장 전망

중앙일보

입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앞으로의 경기 회복세가 어느 시점에, 어떤 속도로 회복할지는 소비에 달려 있다고 판단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 직후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0.5% 동결한 이날 한은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0%다. 지난해 11월 전망치와 같다. 수출과 설비투자 개선세,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에 대한 기대감에도 기존 전망치를 유지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축된 소비와 암울한 고용 상황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엔진인 수출은 올해 날아오를 전망이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상품 수출이 1년 전보다 7.1%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11월(5.3%)보다 1.8%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올해 상품 수출 증가율 전망치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5%(2020년 2월)→3.2%(2020년 5월)→4.8%(2020년 8월)→5.3%(2020년 11월)→7.1%(2월)까지 전망치는 고공행진 중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20일까지 데이터로 추정한 2월 일평균 수출액 증가율은 31.8%로 직전 반도체 빅 사이클이었던 2017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 호조에도 소비 위축으로 성장률 전망 제자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수출 호조에도 소비 위축으로 성장률 전망 제자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수출이 끌어올릴 성장률 예상치를 까먹은 건 얼어붙은 소비와 더 나빠지는 고용이다. 올해 민간소비 성장률은 2.0%에 불과할 것으로 한은은 예상했다. 지난해 11월 전망치(3.1%)보다 1.1%포인트나 낮춰잡았다. 민간소비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5월(4.3%)과 8월(3.8%)에 이어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대면 서비스 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그 분야에 종사하는 계층을 중심으로 소득 여건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이번 겨울 코로나19 확산세가 생각보다 심각해 소비가 지난번(지난해 11월) 본 것보다 더 부진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고용의 24%(지난 1월 기준)를 차지하는 자영업 경기는 사실상 침체 상태”라고 지적했다.

고용 전망은 더 암울해지고 있다. 올해 취업자수는 8만명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8월(20만명)과 11월(13만명)의 전망치와 비교하면 낙폭이 크다. 정부가 1분기 중 90만개의 공공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반영했지만 지난달 고용 쇼크가 반영된 탓이다.

암울해지는 올해 고용전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암울해지는 올해 고용전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실제로 지난달 취업자수는 1년 전보다 98만2000명 줄며 1998년 12월 이후 22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실업률 전망치는 4.0%로 지난해 11월(3.8%)보다 높아졌다.

성장률 전망이 상향 조정될 여지는 있다. 20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4차 재난지원금 등 추경 효과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추경의 지출 내역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전망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지출 내역이 확정되면 추경이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2분기 추가 추경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성장률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올해 물가는 당초 예상보다는 조금 더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기존(1.0%)에서 1.3%로 0.3%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기상여건 악화 등에 따른 식료품 가격 오름세가 전망치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물가 오름세가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총재는 “이동제한 조치 등이 풀리면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분출되며 물가상승률이 확대될 수 있고, 기저효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반등할 수 있어도 지속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때문에 1700조원을 돌파한 가계 부채와 증시와 부동산 등으로의 자산 쏠림 현상에 따른 금리 인상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을 전망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물가 전망을 높이고 완만한 경기 회복 기대를 인정했지만 내수 중심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금리 인상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라는 정도의 중립적인 스탠스(입장)를 보였다"고 말했다.

하현옥ㆍ윤상언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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