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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日검찰은 기소만 한다"는 秋···'검수완박' 힘 실으려다 삐끗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4일 페이스북을 오랜만에 활성화했다. “국회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법을 신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의 초·재선 강경파가 추진 중인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에 힘을 싣는 내용의 글을 새로 올리면서다.

조국 이어 추미애도 "일본 검찰 따라하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임현동 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임현동 기자

장관 재직 시절 일본 검찰을 모범사례로 들었던 추 전 장관은 이번에도 일본 사례를 들었다. “우리에게 대륙법을 이식한 일본마저도 형사는 수사로, 검사는 기소하는 법률 전문가로 각자의 정의를 추구하고 있다”“우리나라처럼 검사실 방마다 수사관을 두고 있는 나라가 없다” 등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검수완박을 측면 지원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2019년 9월 26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일본 같은 경우는 형사사건의 대부분을 경찰이 수사하고 있고, 물론 검찰도 직접 수사를 하지만 동경·오사카·나고야 세 군데의 특수부만 유지하고 있다. 그게 우리나라 검찰조직과 큰 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까지 현지에서 일본 검찰 제도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법조계 관계자에 전화를 걸어 이런 내용을 전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뉴스1

일본 검사는 기소만 하나.
“오해가 많은 거 같다. 이미 잘 알려진 도쿄(東京)·오사카(大阪)·나고야(名古屋)지검 특수부는 물론 일부 검찰청에 있는 특별형사부도 검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수사한다. 경찰이 먼저 수사하는 일반 형사사건도 경찰의 조서만으로 부족할 경우 검사가 피의자·참고인 등을 불러 직접 조사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일본 검사실에는 수사관이 없나.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와 달리 수사관이 조사를 하진 않는다. 검사가 조사할 때 옆에서 타이핑을 치며 조서를 만들거나 실무를 돕는다. 대개 보완수사가 필요하면 수사관보다는 담당 경찰관에게 직접 연락해서 지시한다.”
한국엔 왜 달리 알려졌을까.
“한국은 일본과 다르게 검·경 대립이 심하다. 서로 유리한 논리를 대는 과정에서 일본 사례가 조금 왜곡된 것 같다. 한국이 일본보다 특수수사가 많은 점도 이러한 이야기를 부풀리게 한 원인인 거 같다.”
특수수사 전담 중수청을 만들겠다는 게 여권의 주장이다.
“정치·경제범죄 사건은 그 범죄 성립을 위해 어떤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률전문가만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경찰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경찰이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범죄 대응에 능하다면 검사가 더 잘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사건의 해결이다. 완벽하게 경찰 등 수사기관은 수사만, 검사는 기소만 하도록 하는 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국이 남긴 검 수사권, ‘조국 수사’ 뒤 여 “완전 폐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조국이 남긴 검 수사권, ‘조국 수사’ 뒤 여 “완전 폐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여권의 아전인수(我田引水)는 또 있다. 민주당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와 영국 중대범죄수사청(SFO)·국가범죄수사국(NCA)를 중수청의 유사 사례로 꼽는다. 그러나 FBI는 자체 수사를 하기도 하지만 중대범죄 수사는 보통 미 연방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SFO는 일종의 상설특검으로 중요 경제범죄만 수사하는데, 검사의 참여가 보장된 형태로 수사·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다. 실제 다루는 사건도 한국의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산·대형참사) 범죄와 비교하면 현저히 적다.

이에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관계자는 “중수청은 NCA와 유사하다”고 했지만, NCA는 경찰이 출범시킨 국가수사본부의 모델이었다. 미국 형사제도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미국은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다”라는 여권의 주장에 “도대체 직접 수사라는 게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범죄혐의 입증을 위해 증거를 모으는 행위에 직·간접 구분을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경찰 출신인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검찰은 본래 태생부터 공소관으로 탄생했다”며 “우리나라에 와서 변질해 검찰의 정체성이 어느 순간부터 수사기관화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검찰의 기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반박이 나왔다. “역사적으로 심판관(법원)이 수사·기소까지 다 하는 규문(糾問)주의 재판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형사소추와 재판을 분리하는 탄핵(彈劾)주의를 도입하면서 생긴 게 검찰 제도이고, 수사는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종속 과정인 만큼 수사·기소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대기해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대기해 있다. 연합뉴스

이 와중에 여당 안에선 속도조절론과 강경론이 부딪히는 모양새다. 이들이 각자 입맛대로 대통령의 진의를 해석하며 추진 속도를 저울질하는 사이 범죄 대응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현장의 혼란은 커지고 있다. 수사권 조정이란 변화가 시작된 첫해부터 또 다른 대규모 개편이 예고된 탓이다.

그들도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새로운 수사권 제도의 안착”이 단 두 달 만에 완료됐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수완박’ 추진을 위해 해외 사례를 왜곡하는 무리를 무릅쓸 필요는 없을 테다. 강경 추진론자 상당수는 검찰 수사나 법원 재판을 받는 당사자다. 한 법조인의 말마따나 “여당이 말하는 ‘검찰개혁’에 국민이 안 보이는” 건 혹시 그래서일까.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중대범죄수사청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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