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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자 우대’ 없다는데…취준생 47% “경력만 선호”, 왜?

중앙일보

입력

비어있는 서울시내 한 대학의 취업정보 게시판. [연합뉴스]

비어있는 서울시내 한 대학의 취업정보 게시판. [연합뉴스]

“취직 자체가 어려우니 경력을 쌓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의 청년구직자 설문에 응한 A씨의 답변이다. A씨는 “요즘 수시채용이 늘고 기업의 경력직 선호 현상은 날로 커지고 있다”며 “그런데 청년들은 취직 자체가 어려우니 경력을 쌓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24일 대한상의가 발표한 ‘일자리 상황에 대한 청년세대 인식 조사’에서 청년 구직이 힘든 이유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A 씨처럼 “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해서”라고 답한 비율은 47%로 가장 많았다. 대한상의가 이달 초 19~34세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다.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청년층 기회감소’(26%)와 ‘대학 졸업자 과다’(13%) ‘중소기업 기피 등 일자리 미스매치’(11%)라는 대답도 상위에 있었다.

4대그룹 중 3곳이 수시채용 

실제 취업 현장에선 정기 공채 중심의 신입사원 채용보다는 수시 채용이 확대되는 추세다. SK그룹도 신입사원 채용을 2022년부터 100% 수시채용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SK의 채용 규모는 경력직을 포함해 연간 8000명대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4대 그룹 중 삼성을 뺀 현대차·SK·LG가 정기 공채를 수시 채용으로 바꾼 상태다.

취업 고충 현실을 풍자한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사진 tvN 캡처

취업 고충 현실을 풍자한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사진 tvN 캡처

이들 대기업은 신입사원 채용에 공식·비공식적인 경력직 가산점은 없다는 입장이다. 수시채용은 채용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해당 업무에 관심 있는 인재 영입 가능성을 높이고, 인사 부서가 아닌 실무진이 주도해 함께 일할 사람을 뽑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력직이 필요할 땐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내 채용하고 있다”며 “신입사원은 회사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인재군의 한 축이어서 직무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채용을 꺼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약 절반의 취업준비생이 ‘기업이 경력직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다음달 1일까지 대졸 신입사원 수시 채용 원서를 받는 SK하이닉스는 ‘해당 경력자 우대’와 같은 안내 문구를 표시하지 않았다. 다만 채용절차에선 ‘전공역량 검토’ ‘보유역량 수준 검증’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전인식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과거엔 공채 시험이라는 보편적인 절차를 통과하면 취직을 해왔다”며 “그런데 요즘은 인턴 등 경험을 쌓아야 해당 업무에 대한 관심도를 피력할 수 있다는 생각을 취준생들이 하기 때문에 그것이 곧 경력직 선호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도 “직무 교육 비용이 덜 드는 경력직 채용이 기업 입장에서 유리할 거란 인식 때문에 구직자들이 그런 시각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수원에서 열린 채용 박람회. 뉴시스

23일 수원에서 열린 채용 박람회. 뉴시스

61%가 사실상 구직 포기

대한상의가 지적한 취업 시장의 또 다른 문제는 구직활동 의욕이 낮아진 점이다. 이 조사에서 ‘현재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답은 24%였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고 있다’는 응답이 37%였고, ‘거의 안 하거나 그냥 쉬고 있다’도 24%였다. 대한상의는 이 두 응답 비율을 더한 61%의 청년이 사실상 구직 포기 상태인 것으로 봤다. 전인식 팀장은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제도와 분위기를 쇄신하고, 노동시장 개혁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기업들이 청년을 채용할 수 있는 여력을 넓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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