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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판사 "김명수 사퇴론 이해되지만, 사퇴 이후 우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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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17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17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직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론이 불거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퇴 이후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썼다.

김동진(52ㆍ사법연수원 25기)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16일 오후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퇴 논의에 대한 의견〉이라는 제목으로 A4용지 6장 분량의 글을 올렸다.

2년 지난 시점, 왜 임성근만 콕 집었나

김동진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김동진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그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정치적 권력 투쟁의 늪’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여당에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뒤늦게 가결한 것도, 야당에서 김 대법원장을 형사고발한 것도 결국 정치적 투쟁의 일환이라는 취지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이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후 연루 법관 14명을 발표했을 당시 상황을 들며 “당시 국회는 진실규명을 하지 않았고, 탄핵 절차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왜 인제 와서 14명 중 1명인 임성근 부장판사만 콕 집어서 탄핵안을 의결하고 심판이 진행되도록 했을까” 물었다. 또 그는 “탄핵 절차의 본질은 공직자의 직무 수행 배제인데, 이달 말 임기 만료가 예정된 임 부장판사에게 급하게 탄핵안을 의결한 것이 헌법이 규정한 탄핵 제도의 본질에 부합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을 언급하며 “2년이 지나 정치적으로 미묘한 상황이 전개된 이후 발동된 탄핵소추권은 결코 ‘법치주의’ 및 ‘재판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야당의 김 대법원장 고발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사퇴 요구를 넘어 형사 고발까지 단행한 것은 서울과 부산 등 지자체장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처사라는 주장이다. 김 부장판사는 “야당의 현직 대법원장 고발 조치 역시 사법권 독립이라는 헌법상 순수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거짓말은 문제, 사퇴 이후 고려해야

김 대법원장의 ‘사퇴’가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사법부 수장이 국회와 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한 자체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에 해당하고, 그 자체로 각계각층에서 대법원장 사퇴 논의가 나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라고 썼다.

다만 대법원장의 사퇴가 ‘사법행정위원회’나 ‘사법평의회’의 위상이나 권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법평의회나 사법행정위원회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이후 국회 등에서 제시된 사법 개혁 차원의 기구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등이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에는 사법행정권 총괄 권한을 대법원장에서 사법행정위원회로 옮기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위원 12명 중 외부 위원을 8명으로 하고 법관 인사 심의에도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당시 대법원은 이 법안에 대해 “위헌의 소지가 있어 극히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외부인사 2/3’란 조항을 문제 삼은 대법원은 “사법행정은 재판 독립과 밀접히 관련돼 정치권의 입김과 영향력에 좌우돼선 안된다”고 반박했다.

김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사퇴한 뒤 정치권과 일부 단체들이 사법행정위원회나 사법평의회 권한 확대를 입법화하고, 법관의 주요 인사권에 이 기구들이 실질적 역할을 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동의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1999년 수원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한 김 부장판사는 코트넷과 개인 SNS에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에 대한 의견을 종종 밝혀왔다. 지난 2014년 9월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에 대해서는  "지록위마의 판결"이라고 공개 비판해 논란이 된 적 있다. 또 지난해 2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 삭제하기도 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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