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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있다' 가해 교사 말만 믿었다"···CCTV 못보는 母의 울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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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구속된 인천의 어린이집 보육 교사 2명의 아동학대 혐의는 그들의 범죄가 ‘일상’에 가까웠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지난해 11∼12월 인천 서구의 한 공립 어린이집에서 장애 아동을 포함한 1∼6세 원생 10명을 268회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닐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피해 아동 부모 중 한 명인 A씨는 "CCTV 기록이 지워진 11월 이전부터 있던 학대도 포렌식으로 밝혀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학대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며 눈물을 보였다.

원생을 지속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인천 서구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15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원생을 지속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인천 서구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15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6개월간 꿈에도 몰랐다"

16일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가 너무나 어려운 구조"라고 토로했다. A씨는 "아침에 잠깐씩 보는 어린이집 교사들은 우리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늘 안아줬다"며 "겉으로는 완벽한 어린이집이라 다른 사람에게 추천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새벽에 울면서 엄마를 때려도 ‘아이가 잘 지낸다’는 어린이집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피해 아동 10명은 각각 2개월~10개월 동안 이 어린이집을 다녔다. 모두 장애를 가졌거나 어려서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A씨는 "8명의 교사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통합반·영유아반 아이들만 골라서 괴롭혔다"며 "가해 교사는 수사가 시작된 뒤에도 '그런 적 없다. 믿어줘서 고맙다'며 울었다"고 말했다.

학대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고, 아이들은 매트 위에 모여 앉아서 노트북으로 미디어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학대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고, 아이들은 매트 위에 모여 앉아서 노트북으로 미디어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CCTV, 한 명이라도 봤다면

학부모들은 "우리가 학대 사실을 더 빨리 알았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누군가 CCTV 영상을 잠깐이라도 봤다면 학대 정황을 알아채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에 따르면 어린이집 교사들의 학대 정황이 드러난 것은 지난해 12월 23일이다. 당시 5살이었던 한 장애 아동의 귓불에 상처가 나 있었다. 인지능력과 언어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중증 장애아동이었다. 학부모들이 "CCTV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어린이집 측에서 거절했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CCTV 열람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보건복지부 매뉴얼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어린이집 CCTV 영상은 영상 출연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열람할 수 있다.

8일 오전 인천시 서구청사 앞에서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4개 장애인 단체와 서구 국공립어린이집 아동학대 피해 학부모 5명이 서구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어린이집 가해 교사들에 대한 엄중 처벌과 후속대응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8일 오전 인천시 서구청사 앞에서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4개 장애인 단체와 서구 국공립어린이집 아동학대 피해 학부모 5명이 서구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어린이집 가해 교사들에 대한 엄중 처벌과 후속대응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경찰도 CCTV 안 줬다
지난해 12월 28일 학부모들이 경찰까지 부르자 그제야 어린이집은 CCTV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한 1시간 40분 영상에서만 8건의 학대 정황이 나왔다. 경찰은 어린이집 교사들을 입건했다. A씨는 "CCTV가 없던 5일 동안 과거 영상이 조금씩 지워졌을 것이다. 더 늦었으면 교사들이 영상을 지웠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수사가 시작된 뒤 21일만에 학부모들은 CCTV를 볼 수 있었다. 지난달 17일 경찰은 추가로 확보한 학대 영상을 학부모에게 '눈으로만' 보게 해줬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수집한 영상 정보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제삼자에게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A씨는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CCTV 화명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학대 피해 영상을 기자에게 공개했다. A씨의 딸이 두 명의 교사에게 학대 피해를 당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의 한 경찰서에서는 아동학대 피해 부모에게 영상의 등장 인물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데에 2억원의 비용이 든다며 “2억원을 내고 보려면 봐라”라고 말하는 일도 벌어졌다.

김미숙 한국아동복지학회 감사는 "어린이집 CCTV 열람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감사는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볼 권리가 있다"며 "해외보다 한국이 어린이집 CCTV 열람 절차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김 감사는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클 때는 정부나 학부모 위원회가 불시로 CCTV 점검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개인정보보호법 전문인 한 변호사는 "죄 없는 다른 보육교사들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며 "개인정보보호법은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이 어린이집의 CCTV를 포렌식하고 있다. A씨는 "진작 봤어야 할 영상"이라면서도 "추가로 아이가 당하는 장면을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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